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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아닌 전관박대 어떠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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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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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를 둘러싼 논란은 지루하고 한심하다.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못 찾고 있다. 전관예우 차단을 위한 이런저런 시도가 있었지만 별 효과도 없다. ‘변호사 개업 제한 규정’도 1989년과 97년 두 차례에 걸쳐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결국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헌법적 가치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출신은 1년간 대법원 사건을 맡을 수 없다”는 등의 변호사법 개정이 대신했다.

 하창우 대한변협회장과 차한성 전 대법관의 충돌이 해묵은 논란을 또 촉발시켰다. 차 전 대법관은 지난해 3월 퇴임한 뒤 1년간 영남대 로스쿨에서 강의를 했었다.

  한 대법관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 외국의 경우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 개업을 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미국은 대법관들이 종신제로 근무한다. 일본도 대법관을 끝내면 공증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대책도 없이 무조건 변호사 개업을 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된다.”

 - 퇴직 후 연금으로 생활이 불가능할까.

 “평판사로 시작해 대법관까지 30년가량 근무한 법관들의 경우 한 달에 40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연금으로만 생활하기가 만만치 않다. 재직 때 월급도 뻔한 것 아닌가. 돈 모을 여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대법관들은 순수 봉급만 690만원 정도 받는다.)

 - 퇴직 후 사회봉사 활동이나 공익기관 등에서 근무하면 어떤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어떡하나. 예를 들어 (2012년 임명된) 김소영 대법관은 (2018년) 임기가 끝나면 53세다. 한창 일할 나이에 대법관을 했다는 이유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막는 게 이치에 맞을까. 이런 분들까지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김 대법관이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할 계획이라는 취지는 아니다.)

 - 대법관까지 했으면 ‘평생 갑(甲)’의 신분으로 산 것이다. 현직 때는 권력과 명예를 차지하고, 퇴직 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돈을 버는 것은 ‘국가 권력의 사유화’나 마찬가지다.

 “이번 일을 과도기적 갈등 상황의 한 단면으로 이해했으면 한다. 대법관 출신이라고 무조건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되겠나. 상대 직역과 업무 성격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이번 기회에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그는 “변협회장이 한 개인을 향해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는 듯한 행동을 한 것은 법률가답지 못하다”고 거듭 비판했다.

 하지만 5선 의원을 지낸 박찬종 변호사는 트위터에서 “대법관 전력을 활용해 돈을 챙긴다는 공식을, 젊은 변호사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변협의 퇴임 대법관 변호사 개업 반대는 매우 훌륭하다. 회비를 낸 보람을 느낀다”(김용민 변호사)는 주장도 있었다.

 김종철 연세대 법대 교수는 “소장 변호사들의 불만이 충격요법을 통해 표출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나오면서) 법률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전관예우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무실 운영비조차 벌지 못하는 변호사들의 눈에 대법관 출신의 시장 입성은 ‘쓰나미급’이다. 개업 10개월 만에 27억여원의 매출을 올린 대법관 출신 총리후보자의 사례를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장 한 번 찍어주는데 3000만원을 받고, 로펌 등에서 월 1억원 안팎의 보수를 받는 이들에게 공정한 경쟁을 주문할 수 있을까. 전관예우라기보다 전관비리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김영란법’ 파문을 겪었다. 위헌 논란 속에서도 법의 취지에 공감하는 국민이 70%나 됐다. 그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크다는 증거다. 대법관들도 ‘일정 기간 취업 제한’이라는 합리적 차별을 감수하면 안 될까.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주장처럼 전관예우는커녕 전관박대를 받으면 어떨까. 염결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대법원이 우리 사회의 ‘지혜의 기둥’이 됐으면 하는 법리적이지 못한 생각에서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