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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리시대 '미니 호황'과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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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김광기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김광기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본부장

우리 경제에 모처럼 온기가 돌고 있다. 봄기운을 타고 온 반가운 소식이다. 1% 금리시대를 맞아 주택 거래가 크게 늘고, 아파트·오피스텔 분양 현장은 청약 열기로 뜨겁다. 올봄 이사 행렬은 10년 만에 최대가 될 전망이다. 덩달아 부동산중개업소, 이삿짐센터, 집수리·인테리어업체, 가구·가전업체들이 콧노래를 부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신축·재건축이 봇물을 이루면서 건설현장의 일용직 근로자들은 일감 걱정이 없어졌다고 한다.

 주식시장도 꿈틀거린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회복했다. 유가하락과 원화약세 덕분에 상장사들의 실적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가 인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와 2월 이후 4조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해 혹독한 감원에 시달렸던 증권사 직원들은 오랜만에 환한 얼굴로 퇴근길 회식 자리를 갖는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붐과 어우러져 경기가 단기 바닥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내수를 중심으로 실물 및 심리 지표가 1~2개월 뒤엔 회복 중인 것으로 확인될 듯싶다. 해외 경제환경도 나쁘지 않다. 미국이 금리인상 시기를 늦추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유럽·중국·일본 등은 돈 풀기를 확대하며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미국·독일·영국 등의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초저금리의 뉴노멀 상황이 조성한 세계적인 자산시장 붐에 한국도 뒤늦게 가세하는 모습이다.

 분위기 반전에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까지 내린 영향이 컸다. 결과적으로 잘한 결정이었다. 한국 경제는 초저금리·저유가·원화약세 등이 어우러진 ‘신3저’ 덕분에 앞으로 1년 정도 미니 호황을 누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준금리가 현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증시가 상승흐름을 이어가고 부동산시장도 계속 활기를 띨 전망이다.

 다만 모처럼 맞은 호기를 활용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구조개혁을 통한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다.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이번 미니 호황은 거꾸로 독이 될 수 있다. 내년 4월 총선까지가 마지막 기회다. 선거가 끝나면 박근혜 정부는 레임덕에 들어가 개혁 동력이 급속히 떨어질 게 뻔하다.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를 언급하며 “지난 2년간 경제혁신의 골조를 세웠으니, 이제 그 위에 벽돌을 쌓고 건물을 올리자”고 했다. 그러나 골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지난 2년은 허송세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낡은 하부 골조 위에 ‘빚’이란 벽돌로 집을 짓고 있는 격이다. 새 골조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으니 일단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벽돌을 조심스럽게 쌓으면서 하부 공사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사실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은 언젠가 금리를 올려야 할 때를 대비한 ‘구조개혁 경쟁’을 소리 없이 벌이고 있다.

 우리 정부도 뭘 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개혁플랜과 24개 세부과제를 계획대로 밀어붙이면 된다. 이를 통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면 투자와 소비는 저절로 늘어나게 돼 있다. 하지만 개혁에 실패했을 때 잔뜩 높아진 벽돌집은 자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수 있다. 2017년 경제 위기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가계 또한 향후 1년이 매우 중요하다. 2~3년 뒤엔 국내 금리도 슬슬 올라갈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노후에 대비해 가계자산을 조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집을 줄이고 금융자산을 늘릴 좋은 기회가 열렸다. 집을 사는 사람들은 부채를 상환 가능한 범위에서 쓰고, 그것도 20~30년 장기 고정금리로 꼭 묶어두는 게 바람직하다. ‘집 사서 돈 벌던 시절은 끝났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철저히 실수요자의 자세로 집을 골라야 한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YS 정권 후반기를 돌이켜볼 시점이다. 당시 정부는 기업의 외화차입 규제를 과감히 풀면서 금융 및 노동시장 등의 개혁을 장담했다. 하지만 개혁은 실패했고, 외화부채만 눈덩이처럼 불려놓은 결과가 됐다. 종착역은 외환위기였다. 1100조원 가계부채의 열차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일까.

김광기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