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발 무상급식 중단 … 새누리 '오세훈 트라우마'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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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지사가 새누리당의 아픈 기억을 건드렸다. 무상급식은 새누리당에 정치적 트라우마다.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민주당이 주도한 무상급식에 맞서 정치적 싸움을 벌이다 시장직 사퇴라는 치명상을 입은 뒤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급속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복지 이슈에 태클을 걸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 때 무상보육을 회심의 카드로 꺼내며 민주당에 ‘복지 맞불’을 놨다. 그러다가 최근 증세 논란을 계기로 새누리당 일각에선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무상복지를 폐기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무상보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동안 당 지도부는 어정쩡한 자세였다. 이런 상황에서 홍 지사가 무상급식 폐기를 밀어붙이면서 중앙당의 선택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홍 지사와 비슷한 인식이다. 김 대표는 지난 12일 “무상급식 광풍이 몰아칠 때 전국에서 울산이 유일하게 안 따라가서 재정이 타 지역보다 여유가 있다”며 “홍 지사가 이런 점을 벤치마킹해서 무상급식 중단을 발표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다른 분위기다. 유 원내대표는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무상급식 찬성파로 반대파였던 홍준표 당시 의원과 논쟁을 벌였다. 유 원내대표는 20일 본지와 통화에서 “무상급식을 없애면 곧바로 무상보육도 손보자는 얘기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당으로선 난감한 문제”라며 “일단 최대 현안인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를 처리해 놓고 난 이후에야 검토할 문제”라고 말했다. 강석훈 의원은 “무상급식은 중앙당이 개입할 필요 없이 지자체별로 판단하게 놔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하는 건 장기 과제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경남 의원들에겐 무상급식 논란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내년에 총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여론이 악화될까 봐 신경을 쓰고 있다.

 여상규(사천-남해-하동) 의원은 “지역행사에 나가보니 무상급식 폐지에 대해 젊은 학부모, 주부들의 항의가 꽤 심했다. 지사가 저렇게 나오는데 국회의원들은 책임이 없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안홍준(창원 마산회원) 의원은 “그동안 안 내던 급식비를 다음 달부터 내게 되면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이 부담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내려와서 홍 지사와 맞붙는 바람에 무상급식이 민생이 아니라 정치 이슈로 변질돼 버렸다”며 “이렇게 된 이상 굳이 홍 지사를 비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하·김경희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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