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중, 서울서 '사드 국익'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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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외교 차관보가 서울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말(言)로 치고받았다.

 대니얼 러셀 차관보는 17일 외교부 청사에서 조태용 1차관과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이라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우리 군 당국자들은 한국 국민과 미국을 보호할 체계를 고려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 내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한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러셀 차관보는 중국의 우려에 대해 “제3국이 아직 배치되지도 않은, 이론(theory)에 불과한 안보 체계에 대해 강한 항의 목소리를 내는 건 희한한(curious) 일”이라고 말했다. ‘제3국’ ‘희한하다’는 표현 등에 중국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러셀 차관보의 직설화법은 전날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의 발언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류 부장조리는 16일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중국의 생각을 알렸다”며 “(한국이) 중국의 관심과 우려를 중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략적 모호성’이란 울타리에 갇혀 있던 한국 정부도 이쯤 되자 가만 있지 않았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관해 미국 정부가 협의를 요청해올 경우 군사적 효용성과 안보 이익을 고려해 우리 주도로 판단하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중국의 노골적인 압박에 대해 “주변국이 나름대로의 입장은 가질 수 있지만 우리의 국방안보 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이 이처럼 미·중 외교의 전장(戰場)이 된 데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다 지친 미·중이 공세적 태도로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산정책연구원 봉영식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전략적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양쪽 모두에 불안과 불신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며 “미·중의 압박 강도를 보면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선택을 할 시점이 다가왔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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