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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 속에 새것 품은 한국 공예, 프랑스를 깨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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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물을 떠 먹기 편하게 기울어진 식기(정미선), 입식과 좌식 생활 모두에 쓰일 수 있는 의자(김상규), 탄소섬유를 전통 공예 하듯 엮어 만든 가리개(노일훈)-.

 프랑스 생테티엔 디자인 비엔날레에 변화하는 생활상을 담은 한국의 디자인 작품들이 전시됐다. 한국 특별전 ‘활력(Vitality) 2015: 공예와 디자인을 넘어서’(총괄디렉터 최경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장)이다.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와 조각보 장인 강금성의 ‘한국판 프루스트 의자’, 뉴욕 9·11 테러 현장에 ‘프리덤 타워’를 설계한 대니얼 리베스킨트와 목공예가 양병용의 ‘소반’ 등 건축가·디자이너와 공예가의 협업이 돋보였다.

 생테티엔은 파리에서 남쪽으로 461㎞ 떨어진 공업도시다. 석탄산지를 배후로 견직물·총화기류 생산기지였다.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탄광은 쇠락했지만 첨단 과학과 디자인을 가미해 도시는 혁신을 이뤘다. 오디오의 포컬(Focal), 의료직물의 시그바리스(Sigvaris) 등 업계의 ‘히든 챔피언’들이 도시 안팎에 자리잡고 있다. 1998년 디자인 비엔날레를 시작했고, 2010년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로 선정됐다.

 제9회 생테티엔 디자인 비엔날레가 ‘미의 경험’을 주제로 12일(현지시간) 개막, 한 달간 열린다. 특히 내년도 한·불 수교 130주년을 앞두고 유네스코 창의도시 자매도시로 서울을 초청, 승효상·황갑순·최재훈 등의 작품 140여 점을 전시한다. 한국관은 전시 개막과 함께 국제 콘퍼런스도 열었다. 비엔날레 측과 국민대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 공동 개최로 전통, 생활 양식의 변화를 연구한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의 사례가 소개됐다. 최경란 원장은 “전시작 대부분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문화 융복합 상품개발 및 교육지원 사업’으로 진행한 장인과 디자이너의 협업 결과물이다. 장인정신의 재조명을 통해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려진 무기공장을 재생한 비엔날레 주전시관 중앙의 한국관은 현지 디자인 전문가들로 북적였다. 벤자민 로야트 생테티엔 디자인 비엔날레 공동감독은 “공예가 과거에 속박되지 않고 현대 산업 디자인과 상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평했다. 비엔날레 심사위원이기도 한 가구사 린느 호제의 미셸 호제 대표는 “멘디니와 강금성이 협업한 프루스트 의자뿐 아니라 류수현의 단풍나무 쟁반도 인상적이었다. CNC기기를 이용한 커팅으로 대량 생산 가능성을 열었는데, 수작업처럼 재료의 순수성을 살렸다”고 말했다.

 ◆시내 곳곳 ‘LEE BUL’ 포스터=생테티엔 시내 곳곳에는 ‘LEE BUL’이라고 적힌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불(51)의 회고전이다. 2012년 도쿄 모리미술관을 시작으로 서울 아트선재센터,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MUDAM), 버밍엄의 아이콘갤러리를 거쳐 프랑스로 순회해 온 전시다. 개막식이 열린 13일에는 비엔날레를 맞아 각지에서 온 관객들이 거울 반사를 통해 무한 확장되는 그의 대표작들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이뤘다. 현대미술관은 같은 날 젊은 디자이너 박혜연(31)·송승용(37) 전도 개막했다.

생테티엔(프랑스)=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생테티엔(Saint-Etienne)=프랑스 남동쪽 론알프주의 공업도시. 인구 18만명. 16세기에 철공업이 시작돼 총화기류 등의 군수산업과 리본을 비롯한 견직물 가공업으로 융성했다. 주변 피르미니는 건축가 르코르뷔제가 도시 계획 실험을 한 곳으로 다수의 유작이 남아 있다.

사진 설명

사진 1 현대 건축의 거장인 대니얼 리베스킨트는 산봉우리가 이어지는 풍경, 버선코의 아찔한 곡선에서 우리 전통미를 찾았다. 목공예가 양병용과 협업해 소반을 만들었다.

사진 2 성당처럼 좌대를 만든 생테티엔 디자인 비엔날레 전시장.

사진 3 제9회 생테티엔 디자인 비엔날레는 자매도시로 한국을 초대했다. 비엔날레 전시장 중앙의 한국 특별전 ‘활력 2015: 공예와 디자인을 넘어서’ 전시 장면.

사진 4 과거 생테티엔의 산업기반이었던 무기공장은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로 거듭난 이곳의 위상을 높여주는 전시장이 됐다. [사진 최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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