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에 매달려 실무수업 '찬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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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 로스쿨의 학생과 교수들이 모의 법정에서 판·검사, 변호사 역할을 맡아 재판실무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와세다대 로스쿨에는 실무 중심으로 180여 개의 과목이 개설돼 있다. [와세다대 제공]

일본 도쿄의 외곽에 위치한 국립 히토쓰바시(一橋)대학 로스쿨. 전자상거래시 피해 보상 등에 관한 마쓰모토 쓰네오 교수의 세미나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수강생은 단 2명. 학생들은 교재와 노트북컴퓨터를 펼쳐놓고 교수와 토론을 벌였다.

수업에 참석한 게이오대 법대 출신인 노바타 요코는 "로스쿨 입학 전 컴퓨터 소프트웨어 제작 업체에서 일한 경험을 되살려 관련 분야의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지카와 에미는 "문답식으로 수업이 진행돼 예습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들다"며 "수업이 끝나도 리포트 제출 등으로 하루 4~5시간씩은 공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생이 2명밖에 없는 이유가 궁금했다. 마쓰모토 교수는 "학생들이 사법시험 합격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실무교육 과목은 기피한다"고 설명했다.

본지는 지난달 10~13일 도쿄 와세다(早稻田)대학과 히토쓰바시대학 로스쿨을 비롯, 로스쿨 인가를 담당하는 문부과학성을 현장 취재했다.

◆ "로스쿨이 정답은 아니다"=마쓰모토 교수의 수업은 현재 일본 로스쿨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토론식 수업과 실무위주 교육이 '빛'이라면 시험 위주 교육에 얽매인 학생들의 행태는 '그림자'다.

히토쓰바시 로스쿨은 학년당 정원이 100명(전임교수 28명)으로 도쿄대.와세다대(이상 정원 300여 명)보다 규모는 작지만 경영학 분야와 접목한 소수 정예 교육으로 특화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 호응은 높지 않다. 내년 졸업반 60명 중 경영학과 관련된 분야를 택한 학생은 19명에 그치고 있다. 고토 아키라 법과대학원장은 "사법시험 합격이 공부의 목표가 되다 보니 희망자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와세다대학의 로스쿨도 사정은 비슷하다.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로펌에서 현직 변호사를 보조해 사건 해결에 참여시키는 '법률 클리닉' 수업 등 실무교육 위주로 강좌를 구성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사시에 매달려 '양질의 법조인 양성'이라는 당초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

◆ "졸업생 70%가 사시 재수생으로 전락"=일본의 로스쿨 제도는 2004년 도입됐다. 올해 2년째로 내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되며 로스쿨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신(新)사법시험이 시행된다. 현행 사법시험은 2011년 폐지된다. 일본 정부는 현재 1500여 명인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2011년 3000명까지 늘릴 방침이다.

일본이 로스쿨 체제로 전환한 이유는 한국과 마찬가지다. 사법시험 합격에만 매달린 '고시 낭인'의 폐해를 막고 실무 능력과 전문성 등 자질이 우수한 법조인을 배출하자는 것이다.

올해 문부과학성으로부터 인가받은 로스쿨은 모두 74개로 전체 정원은 5825명이다. 하지만 졸업생의 불투명한 진로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합격 정원이 정해져 있어 내년 사법시험에서 30%만 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비는 국립대 80만4000엔(약 707만원), 사립대 150만~300만 엔으로 기존 법학부보다 1.5~2배 이상 비싸지만 졸업 후 법조인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다.

특별취재팀=김종문.하재식.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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