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 안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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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후 늦게 우리는 관저 뒷산을 산책하다가 남루한 옷을 입은 14살 짜리 동네소년을 만났다. 대통령은 이 소년과 금세 친해져 그의 집까지 따라가 그의 가족을 방문하게 되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형이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정영석이라는 이 어린 소년이 담배장사를 해서 벌어오는 돈으로 가족의 끼니를 이어나가는 딱한 사정을 우리는 알게되었다.


대통령은 이 총명한 영석이가 우선 학교에 나가 공부할 수 있도록 금일봉을 주고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도록 여러 번 당부하고 돌아왔다.
대통령이 남달리 이 14살 짜리 소년에게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자기가 독립운동 하느라고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객지인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병원에서 전염병으로 격리되어 홀로 죽은 외아들 태산이가 14살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했던 단 하나의 혈육을 여읜 그 슬픔과 절규를 『태산아! 태산아!』하고 일기장에 적어놓은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있었다.
나는 오늘 만난 이 소년이 대통령을 자주 찾아와서 대통령의 좋은 친구가 되어 행복한 시간이 많아지기를 바라고있다.
이제 내 나이에는 대통령이 그토록 원하는 아들을 낳을 수는 없지만 그 순박한 소년이 내가 채워줄 수 없는 대통령의 쓸쓸함을 다소나마 달래줄 수 있을지 모른다.
1월29일.
상오 10시에 통화안정위원회의 회의가 있었다.
터키의 전투기 여류 조종사인 「사비야·코켄」소령이 유엔군에 파견되어 한국전선으로 올 예정이라고 한다.
「사비야·코켄」소령은 터키인의 아버지라고 칭송 받는 고「케말·파샤」의 양녀로서 36세의 숙녀라고 한다.

<난민 수용대책 고심>
여성으로서는 세계최초의 전투기 조종사인 「사비야·코켄」소령은 1925년 동부 터키의 쿠르스족 반란 진압 때 12살의 전쟁고아로서 「케말·파샤」의 양녀가 되었는데 이스탐불의 미국계 여자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재원이라고 한다.
곧 「사비야·코켄」소령은 며칠 내로 도착할 예정인데 이 소식은 한국전에 참전중인 터키군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있다고 한다.
오늘 오후 고 「워커」장군의 추도 예배식이 한국기독교 연합회 주최로 거행되었다.
어느 신문에서 장면 총리를 마중 나간 출영 인사들이 『먼길에 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읍니다』라는 훌륭한 한국의 환영인사 대신 『헬로·웰컴 홈!』하고 영어로 인사를 한 장관들의 이름을 나열해서 꼬집어 준 기사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 대통령은 『그 신문 참으로 좋은 말을 썼군 그래』하고 치하하였다.
현재 우리 나라의 공군이 6·25당시보다 3배 이상 증강되었는데 만일 미국이 한국공군과 사관후보생들의 훈련을 충분히 지원해 준다면 우리 나라의 공군이 아시아에서는 가장 강한 군대가 될 것이라고 「헤스」대령 대통령에게 말했다.
사회부의 피난민구호 대책본부에서 제주도에 수용할 수 있는 피난민 수효가 10만명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은 본부요원들에게 모두 함께 머리를 써서 새로운 피난민 수용대책을 세워 이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자고 말했다.
동경에 있는 「덜레스」특사는 「맥아더」장군과 장군의 집무실에서 두 시간 동안 대일 강화조약 문제에 관해 회담했는데 의견을 교환한 모든 사항에 합의를 본 후 일본의 「요시다」수상을 만나러갔다고 한다. 대통령은 한국문제에 대한 「덜레스」특사의 복안과 의도가 어떤 것인지를 대강 짐작하고 거기에 맞서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다.
1월30일
국무회의가 있었다.
우리는 장면 박사에게 오는 토요일 국무총리 장 박사의 귀국과 취임을 환영하는 간단한 다과 파티를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장면 박사는 자기는 아직 국무총리직을 수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더 생각해 봐야한다고 우리 비서실로 전해왔다는 것이다.

<"침략자 중공" 결의>
「무초」대사가 4시께 와서 내일 대구로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는 상오 9시에 떠날 계획이라고 알려 주였다.
그리고 「무초」대사는 대통령에게 미국이 유엔에서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것은 결의안을 밀고 나갈 것이며 다음날 투표가 있을 예정인데 즉시 그 결과를 알려 오겠지만 그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염려는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무초」대사에게 장면씨가 국무총리직을 수락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이 호전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시중의 금값이 떨어지고 있는 반면 쌀값이 오르고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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