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번호 9+1' 박주영, "말보다 경기장서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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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보다 경기장 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잊혀진 축구천재' 박주영(30)이 7년 만에 친정팀 프로축구 FC서울에 복귀해 밝힌 각오다. 지난 10일 박주영과 3년 계약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서울은 11일 박주영 입단식을 가졌다.

2005년 서울에서 프로 데뷔한 박주영은 2008년 모나코(프랑스)로 이적해 준수한 활약을 펼쳐 잉글랜드 명문 아스널에 입단했다. 하지만 아스널부터 셀타비고(스페인), 왓퍼드(잉글랜드), 최근 알샤밥(사우디아라비아)까지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7년 만에 친정팀에 복귀해 부활을 노린다.

이날 공개된 박주영의 새 등번호는 91번이다. 박주영이 입은 유니폼에 새겨진 등번호는 스트라이커 상징인 10번이 아니었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최용수 서울 감독은 "주영이가 팀에 기존 10번 선수(에벨톤)가 있으니, 겸손한 자세로 '9+1'의 의미인 91번을 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때 대표팀 주전 공격수였던 박주영은 등번호 91번처럼 모든걸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

-7년 만에 친정팀 복귀 소감은.

"FC서울에 돌아올 수 있도록 도움 준 감독님과 구단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하다. 쉽지 않은 선택을 해주셔서 감사 드린다. 개인적으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조언해 주신 게 제게 도움이 됐다. 결국은 앞으로 어떤 말보다도 경기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모든 게 좋은 방향으로 갈수 있는 부분이다. 앞으로 잘 준비해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

-K리그에서 어떤 각오로 뛸 것인가. K리그에 마지막 뼈를 묻겠다는 생각인가.

"전 서울에서 프로선수를 시작했고, 서울을 통해 유럽에 진출했다. 마음 속으로 은퇴는 항상 친정팀에서 하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서울 서포터스 수호신과 함께한 시간은 제 가슴 속에 큰 추억으로 남아있다. 팬 분들이 경기장에서 큰 함성과 응원을 보내 주신 게 힘이 됐다. 저도 선수생활을 마무리해가는 시간이고, 앞으로 뛸 날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다. 그 시간 동안 팬 분들께 추억과 좋은 경기,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용수 감독은 "박주영이 친정팀에 복귀하기까지 상당히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사실 국민들과 축구팬들, 미디어 관계자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뭔지 잘 알고 있다. 박주영은 오래 전 뛰어난 재능으로 국민들에게 상당히 기쁨과 희열을 줬다. 한 때 국민을 대표하는 주전공격수였다. 하지만 지난 과거의 일일 뿐이다. 하루 빨리 팀에 녹아 들고, 팬심이 뭔지를 본인이 잘 알아야 한다. 팬들의 마음에 빨리 흡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지고 있는 능력과 실력을 경기장에서 보여줘야 한다. 그라운드 안에 정답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등번호 91번을 택한 이유는. 스트라이커 상징 번호는 10번이다. 91번은 '9+1'의 의미인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감독님께 여쭤보니 91번이 남는 번호라서 결정했다."

(최용수 감독은 "주영이가 10번 선수가 있으니 겸손한 자세로 '9+1'의 의미로 91번을 달겠다고 했다. 난 현역 시절 일본 J리그에서 뛰다가 서울에 복귀했다. 당시 단장이 등번호를 물어보길래 '당연히 10번 아닙니까. 우승도하고, MVP도 탔는데'라고 말했다. 당시 팀에 10번이 박주영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신문을 통해 봤다. '그래도 10번을 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으니 '팀에서 나가라'고 농담식으로 말씀하시더라. 난 충격을 받았다(웃음).”

-아스널에서 많이 못 뛰었다. 웽거 감독과 어떤 대화가 있었나. 왜 출전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웽거 감독님이 선수들과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출전에 대해 특별히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훈련장에서 그분이 보시기에 제가 부족했기 때문에 경기에 못나가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속상하지 않았나.

"경기에 많이 뛰고 싶은 생각은 했다. 그래서 팀을 옮겨서라도 뛰겠다고 생각했고, 많이 찾아봤다. 1년 후 스페인팀에 가기도 했었다. 속상하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편하게 생각했다."

-국내 복귀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가 망설이고 있었고, 다른팀도 알아보는 상황이었다. 감독님이 편안하게 와서 열심히 하면 앞으로 잘 될거라고 툭 터놓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돌아가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국내 복귀 결정에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었나.

"장애물은 아니다.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마음의 결단을 해야하는거고, 선수생활을 어떻게 이어 나갈지,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과 구단이 도와주셨다."

-몸상태는 어떤가.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전반기 모든 경기 풀타임을 뛰었다. 이후 감독님이 바뀌면서 경기를 못나갔지만 훈련을 꾸준히 해왔다. 최용수 감독님 밑에서 훈련하면서 컨디션을 빨리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

(최용수 감독은 “주영이는 오늘부터 훈련에 합류한다. 팀 전방 공격수들이 조급해하는 부분이 있다. 주영이가 훈련을 통해 녹아 들고, 출전 시점을 잘 잡아야 한다. 본인도 노력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분명 팀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과 관계가 변할 수 있나.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변하겠다고 말씀 드리기보다는, 서울에서 공식적으로 선수들을 대표해 인터뷰해야되는 부분을 피할 생각은 없다. 감독님과 구단과 잘 상의하고, 조언도 구하며 적절하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최용수 감독은 "박주영은 국가대표 선수로서 상당히 좋은 경기력으로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프로선수와 공인으로서 소중한 팬들과의 접근성, 미디어와 관계가 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좀 더 팬들에게 알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제 서울에 입단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스킨십 가져가겠다.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가겠다. 주영이도 그런 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 감독은 “주영이는 팀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상당히 밝다. 유독 미디어와 관계가 약간 좋지 않아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주영이를 컨트롤해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었다고 생각한다. 팬들과 언론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2005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이 위치에 오기까지 언론의 도움도 있었다. 지금도 주영이는 변하고 있는 것 같다. 큰 쪽으로 마음을 열고, 좀 더 그렇게 하다 보면, 본인도 오해들을 풀고, 긍정적인 효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준우승을 거둔 호주 아시안컵은 봤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예선이 있는데, 대표팀에 대한 꿈은 계속해서 갖고 있나.

"사우디에서 아시안컵을 봤다. 대회를 앞두고 우리나라와 사우디의 평가전을 소속팀 선수들과 봤다. 사우디 선수들이 한국이 질 거라고 얘기했지만, 난 무조건 이긴다고 했는데, 우리가 이겼다. 결승까지 진출해 좋은 성적을 냈다. 난 대표 선수가 아니라서 팬 입장에서 응원했다. 선수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응원하고 축하해줬다. 대표팀 발탁과 관련해 말하는 건 시기상조다. 대표팀 합류를 하고 못하고는 제 권한도 아니다. 제가 할건 서울에서 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경기장에서 좋은 경기를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친정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는데, 향후 유럽 진출은 아예 포기한건가.

"지금은 서울로 팀을 옮겼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겠다. 앞으로의 일은 저도 모르겠다. 3년 후 선수 생활을 그만 둘 수도 있고, 요즘 같아서는 오래할 수도 있지만, 상황과 여건을 봐야 한다.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제가 여기서 잘하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다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순간에 초점을 맞추겠다."

-K리그에서 명예회복하고 싶은 마음은. 독일에서 뛰던 차두리도 서울에 입단해 아름다운 은퇴를 향해 가고 있는데.

"감독님께서 명예회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감독님도 도와줄테니 열심히만 뛰자고. 사실 전 명예회복해야 된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어쨌든 전 축구선수고 프로선수다. 경기에 많이 나가고 싶은 열망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때문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포함해 2가지 다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

-2005년 신인 시절 K리그 흥행을 일으켰다. 침체된 K리그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있나.

"제가 왔다고 해서 흥행이 될까요(웃음).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어쨌든 K리그에 많은 관중이 오려면 재미있어야 한다. 감독님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축구를 하다보면 관중과 서포터가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외에서 뛰면서 얻은 성과는.

"대표팀에서 항상 선수들과 이야기할 때 'K리그는 절대 외국리그와 그렇게 차이 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수준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경쟁력 있는 리그다. 제가 유럽에서 뛴 게 큰 도움이 되기 보다는, 경쟁력 있는 리그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 찾겠다. 경기를 많이 뛰어야 한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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