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바람을 '피는' 걸까, '피우는'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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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헌법재판소가 62년 만에 간통죄를 위헌 판결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헌재의 결정 직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간통죄 폐지 반대 의견이 49.7%에 달했다. ‘잘한 결정’이라는 찬성 의견은 34.0%였다.

 “간통죄가 있다고 해서 바람피는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며 간통죄의 실효성이 없어진 지 오래라는 찬성 의견부터 “바람핀 사람이 오히려 당당히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등 가정이 파괴될 우려가 있다”는 반대 의견까지 간통죄 관련 논의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한 이성에 만족하지 않고 몰래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지는 경우 위에서처럼 ‘바람피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바람피우다’고 해야 바르다.

 ‘피다’는 동작이나 작용이 주어에만 미치는 동사, 즉 자동사다. 따라서 목적어를 취할 수 없다. “꽃이(주어) 피다”는 자연스럽지만 “꽃을(목적어) 피다”는 부자연스러운 걸 보면 자동사는 목적어를 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람’이 ‘피다’와 짝을 이뤄 쓰이려면 “바람이 피다”와 같이 주어+서술어의 관계가 성립해야 하나 “바람이 피다”는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바람을 피우다”와 같이 ‘피우다’를 써야 한다.

 “담배를 피다” “게으름을 피다” “거드름을 피다” “재롱을 피다” 등도 모두 잘못된 표현으로 “담배를 피우다” ‘게으름을 피우다” 등처럼 ‘피우다’를 써야 한다.

 “바람을 피다”가 틀린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피다’를 ‘피우다’의 준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다’의 사동사(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지 않고 남에게 그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가 ‘피우다’이므로 ‘피우다’를 줄여 ‘피다’를 쓸 수는 없다.

 ‘피다’는 목적어를 취할 수 없는 자동사이며 ‘-우-’와 결합해 목적어를 취하는 타동사 ‘피우다’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도움이 된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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