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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야구장 시구 … 미 대사들의 스킨십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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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주한 미국대사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공공외교에 활용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드럼 치는 외교관’으로 각종 공연에 드럼 주자로 참가했다. 2008년 5월 자선행사에서 연주하고 있다(왼쪽 사진). 한국어에 능숙했던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한국인들을 만났다. 2009년 4월 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 자전거 축전’에 참석했다(가운데). 성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대사로 호감을 샀다. 그는 2014년 8월 잠실야구장에서 시구도 했다(오른쪽). [뉴시스]

2011년 10월 캐슬린 스티븐스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임기를 마치면서 한국인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2분30초 동안 한국말만 사용한 동영상이었다.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달리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는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구를 인용했다.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미국에 가셔도 한국을 많이 자랑해 주시리라 믿는다” “대사님의 한국 사랑이 모든 이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마크 리퍼트 대사가 피습 직후인 5일 트위터에 한국말로 쓴 “같이 갑시다!”라는 메시지가 여론을 움직이고 있다. 한·미 동맹에 악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당초의 우려와는 다른 방향이다. 리퍼트 대사가 인터넷을 통해 한국인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쌓은 신뢰 덕분이다.

 리퍼트 대사처럼 역대 주한 미국대사들은 한국인의 마음을 사기 위한 ‘공공외교’에 노력해 왔다. 공공외교는 외교관을 상대로 한 전통적인 외교와 달리 일반 대중을 상대로 공감대를 확산해 지지를 끌어내는 ‘마음 외교’다.

 미국 대사들이 한국에서 공공외교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2002년 말 이후다.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후 불어닥친 반미 분위기에 대한 대응이었다. 2001년 9·11테러 때 아랍권에 만연한 반미주의의 심각성을 체감한 미국은 당시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으로 공공외교를 모색해 왔다.

 2004년 8월 부임한 크리스토퍼 힐 미 대사는 한국에서 공공외교의 테이프를 끊었다. 그는 ‘인터넷 카페 외교’를 펼쳤다. 2004년 11월 다음(Daum)에 ‘카페 유에스에이(Cafe USA)’를 개설한 후 직접 글을 남기면서 네티즌과 소통했다. 그해 12월에는 ‘Ambassador’라는 ID를 사용해 네티즌과 직접 채팅을 했다. 반미 네티즌의 여론이 인터넷을 통해 움직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뒤를 이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음악’을 외교에 활용했다. 예일대 재학 시절 록밴드에서 갈고 닦은 드럼 솜씨를 대중 앞에 선보였다. 한국 고등학교 밴드와 합주를 하거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과 합주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 대사가 드럼을 치면 한국인들이 미국을 좀 더 ‘문화적인’ 눈으로 보는 플러스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본지 2006년 2월 27일자 29면>

 버시바우 대사의 후임인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공공외교에 가장 힘을 쏟았다. 한국인을 만날 때면 능숙한 한국어로 자신을 ‘심은경’이라 소개했다. 제주도를 방문했을 땐 해녀복을 입고 직접 물질을 하는 등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한국인을 만나는 ‘자전거 외교’도 했다. 2010년 8월엔 자전거를 타고 4박5일 동안 낙동강 일대를 돌아다녔다. “미국 대사들이 만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방문한 적이 없었던 곳을 찾아 다니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성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대사라는 ‘혈통’이 자산이었다. 2011년 11월 한국에 도착한 뒤 첫 주말 저녁에 가족들과 나가서 라면과 우동, 김밥을 먹었다. 그러곤 블로그에 “여전히 한국 입맛이 살아 있었다”고 글을 올렸다. 지난해 3월 방송에 출연해 “김치찌개가 좋은지 된장찌개가 좋은지 묻는 질문이 북핵 문제보다 더 어렵다. 술 중엔 소주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2010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은 “21세기 외교관은 줄무늬 양복 정장뿐 아니라 카고 팬츠(덮개 있는 호주머니가 달린 캐주얼 바지)도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관을 만나는 것이 외교의 전부가 아니란 뜻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대미 여론이 외교관계에서 중요한 변수임을 알고 있다”며 “‘리퍼트 효과’는 한국도 적극적 공공외교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유지혜·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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