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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주영' 10만명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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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4년간 갈고닦은 기술로 ‘웨어러블 로봇’회사를 창업한 장재호 박사가 지난 3일 경기도 안산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실험실에서 로봇을 시험하고 있다. 배경은 맨손으로 현대그룹을 일군 고(故) 정주영 회장의 모습이다. [강정현 기자]

“31㎡(약 9.4평)에 불과한 사무실. 경기도 안산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경기지역본부 한쪽에 마련된 곳이다. 종잣돈은 사비로 충당한 1000만원뿐이다. 닷새 전엔 비로소 법인 설립 신청을 마쳤다. 회사 이름은 FR(Field robot·야외 로봇) 테크놀로지다.

 내 이름은 장재호(40). 지금까지 생산기술연구원 ‘로봇 연구 실용화그룹’에서 일했다. 8000만원대의 연봉을 받는 따뜻한 자리였다. 부모님은 ‘창업이란 고생을 왜 사서 하느냐’고 다그쳤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을 연구했다. 소방관이 로봇을 몸에 장착하면 50㎏의 장비를 메고도 가뿐히 움직인다. 국방·물류·제조업에서 요긴한 기술이다. 현재 세계시장 규모는 800억원 정도지만 2019년엔 6200억원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국내에선 기술을 개발해도 그뿐이었다. 특허기술이 있어도 이전해 줄 곳이 없었다. 기업들은 ‘로봇 잘 봤다’는 말로 끝이었다. 내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절로 꿈틀댔다. 그러던 지난해 10월 ‘로보 월드’ 행사 때였다. 중국 기업이 ‘웨어러블 로봇을 사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더 이상 창업을 미룰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생산기술연구원에 ‘사내 벤처’ 신청을 했고 승인을 받았다.

 6년 뒤엔 매출 200억원, 직원 30여 명의 번듯한 회사로 키우는 게 나의 꿈이다. 이번 주부턴 본격적으로 ‘영업’을 뛰어야 한다. 모든 게 처음 해보는 일이다. 두려움도 크지만 이미 도전은 시작됐다.”

 장재호 박사는 지난 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험난한 ‘창업 스토리’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미개척 영역의 로봇기업을 만든 ‘도전가(Challenger)’이자 대기업 비즈니스 관행에 반기를 든 ‘혁신가(Changer)’였다. 그 안엔 ‘기업가 정신’이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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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는 연중기획으로 창업에 나선 장 박사처럼 기업가 정신에 도전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들은 생기를 잃어버린 한국 경제를 살릴 ‘챌린저 & 체인저’다. 김진수(대학 창업교육센터 협의회장)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같은 창업가 10만 명을 양성하는 프로젝트를 본격 시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꼭 50년 전인 1965년 한국의 수출품은 오징어·김·합판이었다. 이젠 스마트폰·자동차·조선 등이 세상을 주름잡는다. 정 회장같이 바닥에서 시작한 ‘1세대 기업가’들이 변화를 주도했다. 정 회장이 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港) 공사를 따냈을 때였다. 300m 산 하나를 통째로 바다에 메우는 공사를 놓고 모두 ‘불가능’을 외쳤다. 하지만 정 회장은 공사모를 쓰고 현장을 누볐고,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4분의 1(25%)인 9억3000만 달러를 벌어 왔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은 예전 같지 않다. 그 때문에 고속성장 호시절도 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은 평균 3.1%로 내려앉았다. 현재 1인당 국민총소득은 2만8000달러로 추정되지만 ‘증가 속도’는 갈수록 떨어진다. 그 후유증은 일자리 부족이다. ‘청년 실업’의 강도는 미국·프랑스·일본보다 심각해 ‘세대 갈등’ 뇌관이 되고 있다.

 돌파구는 ‘창업의 숲’을 키우고 ‘기업 내 혁신’을 이끄는 겁 없는 도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창업의 경우 선진국들은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를 돌파할 시점에 신생 기업들이 봇물을 이루며 경제를 살렸다. 미국에선 실리콘밸리의 ‘개라지(Garage·차고) 창업’으로 상징되는 벤처기업들이 여전히 해마다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다.

 혁신도 창업 못잖은 힘을 발휘한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120년간 여러 분야에서 1등을 달린 제너럴일렉트릭(GE)의 비결은 ‘혁신 역량’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GE는 끊임없이 혁신 소기업을 인수합병하고 내부 기술력을 다진 끝에 ‘전기→가전→항공기엔진·MRI장비’에 걸쳐 성공적으로 생존 번영해 왔다. 신용한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 위원장은 “사회적으로 도전적 창업과 혁신을 북돋는 문화부터 더욱 확산돼야 한다”며 “그게 바로 7년간 2만 달러 소득에 갇혀 있는 대한민국의 회생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챌린저 & 체인저’=도전으로 세상을 바꾸는 ‘신(新)기업가’ 군단을 말한다. 그들의 무기는 창업이다. 치킨집·식당 등의 ‘생계형 개업’이 아니다. 상상력·혁신으로 새로운 ‘사업의 열쇠’를 찾아내고 실행에 옮기는 ‘기회추구형 창업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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