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성에 포함된 의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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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간통죄 위헌 판정이 나면서 사회 한편이 시끄럽다. 남녀 모두에게 성(性)이 생물학적 신체 행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 의식이 인간의 심리적 실존과 관련되는 중요한 요소인 점은 여자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는 남자에 대해서만 말해보기로 한다.

 우선, 남자는 성을 내면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는 창구로 사용한다. 성 충동과 파괴 본능이 동일한 뿌리에서 비롯되는 에너지여서 섹스를 하고 나면 공격성이 감소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해소된 듯 느낀다. 둘째, 남자는 성을 경쟁 도구라 여기는 측면이 있다. 그런 이들은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쟁취했다고 느끼며 섹스를 통해 승리감을 맛본다. 오이디푸스기의 경쟁심에 뿌리를 둔 감정이다. 셋째, 남자는 많은 여자를 갖는 것을 성공의 증표라 여긴다. 예전 어른들이 여러 첩실을 두었던 이유도 성공하면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명리학에서는 남자에게 재성(財星)을 돈과 여자로 풀이한다. 오래전부터 여자를 사유재산쯤으로 여겼고, 더 많은 섹스를 할수록 더 성공한 삶이라 믿었다는 방증이다. 오늘날에는 갑인 남자가 되어 을인 여자를 사용하려 하거나, 섹스 상대를 부풀려 자랑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성을 통해 자기 존재가 증명된다고 여긴다. 그런 이들은 섹스할 때 사랑받는다는 느낌,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고백한다.

 유아기 성 충동에서 사랑과 승리감, 안전하게 존재한다는 감정들이 발전돼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 그런 욕구들이 섹스 행위로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성취감은 사회적 역할을 해냄으로써,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친밀한 대상과 갈등을 해결해나감으로써, 살아 있다는 느낌은 ‘지금 이곳’의 삶에 집중함으로써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여전히 섹스라는 창구만으로 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 그런 이들은 걸핏하면 상대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새로운 성적 대상을 찾아 떠돈다. 외도란 삶의 문제를 성숙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며, 자기 문제를 타인에게 투사한다는 뜻이다.

 간통제가 폐지될 거라는 기대에서 쾌재 부르는 이가 있다면 그는 풍요로운 삶의 영역들을 성 충동 하나로 환원시켜 놓은 사람이다. 우리나라가 ‘바람의 왕국’이 될까 봐 걱정하는 이들은 타인을 성 기관밖에 없는 단세포 동물로 인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어 인생을 리비도 구렁텅이에 처박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의 선택일 뿐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