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은폐·고립 타개 노린 위장평화 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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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초부터 한반도 평화정착을 둘러싼 관련 당사자들의 움직임이 예각 화되고 있다. 그런 기류가 비록 아직은 손재식 통일원장관의 지적처럼 북한의 위장평화책략으로 촉발된 감이 질더라도 버마참사의결과로 한층 고조된 남북한 긴장관계의 완화를 위해 관련당사자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평가된다.
먼저 북한의 3자 회담제의는 손 장관의 성명에서 보듯 폭력도발을 호도하고 그로 인해 빚어진 국제사회에서의 곤경을 타개하기 위한 양동 책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어 그 성실성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그들이 작년 10월9일 버마 참사를 일으킨 하루전인 10월8일 3자 회담을 제의했고 부산 다대포 간첩침투 사건이 있은 바로 그날인 작년 12월3일에 다시 이 제의를 되풀이 한 것만 봐도 이 제의가 양동 책략인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6.25남침 직전인 50년6월10일 남로당의 거물 이주하·김삼용과 조만직 선생을 교환하자고 했던 일도 있다.
뿐더러 미국을 주 대상, 한국을 종속대상으로 하는 그들의 3자 회담제의는 민족문제의 주체적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그들의 전가보도인 「주체사상」과도 상치하는 기만전술임이 분명해진다.
더욱이 김일성이 지난해 11월16일 루마니아 공산당대표단을 맞아 현 한국정권과는 남북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을 지난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뒤늦게 보도한 바로 그날 그들이 3자 회담제의를 다시 결정했다는 이율배반적 행위를 보면 북한의 태도는 전혀 진실성이 없다고 봐야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지상명제라는 소명에 따라 민족문제의 주체적 해결을 위해 남북한 양자회담을 거듭 촉구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가 관련당사자의 첨예한 이해를 가졌다는 국제환경을 인식해 한국동란 당사자인 남북한 및 미·중공의 4자 회담 또는 한반도 분단에 관련되는 일·소를 더 넣은 6자 회담 등을 포괄하는 관계국 회담의 개최까지도 수용하는 발전적 대응을 하고 있다.
정부가 북한의 버마참사라는 전대미문의 만행자행에 대해 들끓는 국민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버마참사자행을 공식·비공식으로 시인, 사과하고 관계자에 대한 처벌을 한다면 일단은 북한의 성실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본다는 유연하고도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인 것은 특히 주목해야할 점이다.
정부는 당초 북한이 버마참사의 자행을 시인, 사과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해야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해 왔으나 이번에 「시인 및 사과」에 「공식·비공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완화했고 더욱이 「책임자의 처벌」을 「관련자의 처벌」로 온건 화했다.
정부의 4자 또는 6자 회담 수용자세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 말 우리의 이 같은 자세를 중공 측에 전달한 것으로 믿어진다. 비록 중공 측이 공식으로는 북한의 3자 회담을 지지하고 4자 회담을 거절하곤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4자 회담에 수긍하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워커」주한 미대사도 11일 『중공이 「한반도 긴장의 완화 및 축소를 위한 방안」이 어떤 형태로든 모색돼야 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되풀이 해왔다』고 전제, 남북한 문제에 미·중공간에는 이미 이에 대한 견해 조정이 깊숙이 이루어져 있음을 암시했다.
이 같은 해석은 또 다른 시사로도 뒷받침된다. 미 국방성 고위관리가 10일 미·중공 정상회담 내용을 배경 설명하면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외교적 메시지들이 현재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중공 정상회담에서 중공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4자 회담에 대한 북한의 동의를 끌어내는 문제가 주요 논의의 대상이 된 듯한 시사로 보인다.
다만 이미 중공을 통해 한미 양측의 입장을 전달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북한이 미·중공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10일과 같은 상황에서 세 번째로 다시 3자 회담을 제의한 저의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소식통은 북한이 중공의 한반도 통일보다는 안정희구 천명에 대한 불만, 4자 회담을 수긍하는 듯 했던 중공 측 자세에 대한 견제가 아닐 까고 추측한다.
따라서 그는 북한의 3자 회담제의는 그들의 국제적 고립을 모면하려는 평화위장공세의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중공은 물론 공식적으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북한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일관된 방침에 따라 3자 회담을 지지하고 4자 회담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렇지만 중공이 남북한 문제는 당사자끼리 처리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떠나 미·중공이 협력하면 한반도 긴장완화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처음으로 북한의 제의를 미국 측에 전달하는 등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보인 사실 등을 미루어 볼 때 단기적으로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4자 회담의 전망이 흐리지만은 않다고 소식통은 내다봤다.
또 정부의 버마사건 해결방식의 유연한 자세변화가 미국과의 계산된 절충아래 나온 것이라면 이는 필경 미·중공간의 사전협의 하에 나온 타협의 소산일 수도 있어 한·미·중공간에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하나의 도식, 즉 4자 회담 안에 인식을 함께 해가고 있다는 상정도 가능하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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