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북한서 멀어지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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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한국.미국.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도쿄의 미국 외교관 집 식탁에 둘러앉아 노무현(盧武鉉)-부시 회담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먼저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은 미국과 일본이 盧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도쿄에서 정계 인사들을 만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도 같은 내용의 말을 전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盧대통령에 대해 걱정을 했는데 미국에서의 언행을 보고 마음이 놓인다는 반응입니다." 보수파 정계 지도자들은 金총재에게 일본 정부가 송금 금지를 포함한 대북 제재조치를 취할 의향까지 밝혔다.

*** 對北 제재조치 취하려는 까닭

북한 핵이 일본 여론을 크게 자극한 결과다. 유사시(有事時) 관련 법안도 중의원을 쉽게 통과했다. 북한에 대해 강경노선으로 돌아서는 정책을 견제할 세력이 없다. 북한이 다시 미사일 시험발사라도 하면 북.일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데까지 악화될 것이고, 북한 선박이 일본 영해에 침투하면 일본은 단호하게 대응할 태세다.

盧대통령이 국내 지지세력의 눈치 안보고 과감하게 미국의 입장에 다가서고, 한.미 공동성명이 거의 미국의 입맛대로 꾸며진 데에도 일본은 흡족해 한다. 특히 일본은 남북관계를 핵 협상의 진전에 연결시킨 것과 핵 위기가 악화되면 북한에 대한 추가 조치를 취한다는 부분을 환영한다. 그것으로 6월 초 일본을 방문하는 盧대통령에게는 후한 대접이 보장된 것 같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盧-부시 공동성명이 북한에 대해 취할 구체적인 내용을 얼버무리고 넘어간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공약한 盧대통령이 이제부터는 한국이 북한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 것을 의미있게 본다. 핵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남북대화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어간다.

군사문제에 정통한 일본의 전문가는 공동성명에 미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 문제가 들어간 것에 주목했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행동의 자유를 제공했다는 해석이다. 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미국의 선제공격만은 반대하는 것이 아직은 일본의 입장이다.

그런 걱정을 하는 이유로 거론된 것이 이라크전쟁을 주도한 미국 신보수파 집단의 대북한 강경 노선이다. 부시가 말하는 악의 축에 드는 불량 국가들이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수상한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문제의 시설을 예방 공격한다는 것이 신보수파의 확고한 자세다.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제거에 성공한 그들의 기세는 절정에 이르렀다.

북한에 대한 확고한 자세가 필요하지만 미국 신보수파의 움직임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유엔의 결의가 없고 동맹국과 주요 국가들이 반대해도 테러를 지원한다는 의심을 받거나, 핵과 미사일을 수출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선제공격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굳어졌다. 그런 자세가 북한 같은 나라에는 유용한 견제작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반가운 아이러니다.

*** 美 신보수파 움직임이 변수로

미국에서 돌아온 盧대통령을 여당이 공격하고 야당이 옹호하는 역할 전도(轉倒)의 기이한 현상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처지를 방불케 한다. 이라크 공격에 동참하여 국익에 기여한 블레어도 국내에서는 야당의 지지를 받으면서 여당으로부터는 비판을 받는다.

부시-고이즈미, 盧-고이즈미 회담이 잇따라 열린다. 으뜸 의제는 북핵이다. 북한이 미국의 생리를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 일본은 북한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군사적인 조치만 아니면 일본은 북한 제재에 적극 호응할 기세다.

북핵 문제를 계기로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이 크게 바뀔 기로 (岐路)에 섰다. 중국이 미국의 북한 견제에 호응하는 것이 그 증거의 하나다. 盧대통령이 부시가 좋은 상대(Easy man)라고 부르는 실용주의자로 변신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