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정의 High-End Europe]</br>영국 바스의 로열 크레센트 호텔, 18세기 귀족 생활 만끽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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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백 년 된 거목들 사이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정원, 그 뒤엔 팔라디오 양식(Palladianism)으로 지어진 웅장한 석조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당장이라도 실크 드레스를 입은 귀족들이 우아한 몸짓과 함께 나타날 것 같다. 18세기에 시간이 멈춘 듯 한 영국 남부의 바스(Bath)이다.

 바스는 기원 후 1세기 로마인들이 만든 대규모 온천 도시이다. 목욕을 뜻하는 'Bath'라는 말도 이 도시의 이름을 따랐다고 한다. 항상 섭씨 46도를 유지하는 세 곳의 온천수를 소중하게 여겨 로마인들은 엄청난 규모의 온천장을 지었다.

 이곳을 사랑했던 것은 고대 로마인들만이 아니었다. 18세기 영국의 조지 왕은 런던에서 가까운 바스를 상류층을 위한 휴양지로 바꿨다. 수많은 건물들을 지어 사치스러운 귀족들의 사교 공간으로 활용했다. 이를 즐기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부유한 귀족과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근대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제인 오스틴(Jane Austin)의 작품 속에서도 당시 바스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1801년부터 1806년까지 이곳에 살며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 등의 작품을 썼다.

 제인 오스틴 센터에서는 그녀가 살았던 집은 물론 거주 당시 작가의 생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전원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혼을 물질주의적 세태와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으로 풀어냈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 배스가 보여주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의 모습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로열 크레센트를 방문해야 한다. 초승달을 뜻하는 크레센트라는 말 그대로 거대한 저택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늘어서 있다. 1767년부터 74년에 걸쳐 존 우드(John Wood)가 지었는데 명사와 귀족들이 임대해 머물던 별장이었다. 지금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꼽힌다.

건물 내 박물관인 넘버 원 로얄 크레센트(No1 Royal Crescent)와 로얄 크레센트 호텔에는 사치스럽고 여유로웠던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문화 유적 속에 자리잡은 특별한 호텔, 250년 전 모습 속에서 현대적 서비스를 경험해보면 마치 당시의 영국 귀족이 된 듯하다. 예전 모습 그대로 최고급 스파를 제공하는 '바스 하우스'에서 온천도 할 수 있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면 러크남 파크 호텔(Lucknam Park Hotel)도 있다. 바스에서 9km 정도 떨어져 있다. 200년 된 라임 나무와 너도밤나무로 이어지는 1.6km의 터널을 지나면 그림처럼 펼쳐지는 저택이 바로 러크남 파크 호텔이다. 200㏊나 되는 넓은 부지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 스파, 끝없는 정원과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그런 호텔이다.

 호텔 방도 우아하다.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캐노피 침대와 벨벳 커튼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다. 스파에서 휴식을 취한 후 은제 식기에 담겨 나오는 애프터 눈 티 한 잔과 함께 정원에서 시간을 갖는다면 마치 제인 오스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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