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라인·번지, 안전규정 아예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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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또 다른 안전 사각지대였다. ‘집라인(zip-line)’이란 놀이기구를 타던 초등학생이 떨어져 숨졌다. 놀이시설에 대해 아무런 안전 규정이 없는 것부터 문제였다.

 지난달 28일 오전 10시35분쯤 충북 보은군의 놀이공원에서 집라인을 타던 이모(12)군이 24m 아래 보도블록 길로 떨어져 숨졌다. 집라인은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줄로 연결해 도르래를 달고 여기에 매달려 내려오는 기구다. 이군은 이날 다니던 체육관 체험학습을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은 이군의 몸을 묶은 줄과 도르래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요원의 출발 지시를 들은 이군이 도르래를 타려다 바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진행·안전요원인 박모(23)씨를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할 예정이다.

 하지만 놀이공원 운영회사에 대해서는 안전요원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집라인이나 번지같은 하강 레포츠 시설과 관련한 안전 규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안전 점검 대상 또한 아니다. 일부 업체들이 미국 챌린지코스 기술협회(ACCT)가 정한 시공·운영 기준에 맞추고 있을 뿐이다. 사고가 난 보은군 놀이공원은 “출발 지점 부근에 안전망을 설치해야 한다”는 ACCT 규정도 따르지 않았다. 보은군의 놀이공원에 이런 안전망이 있었다면 이군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하강 레포츠 시설은 종종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데도 안전관리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집라인 추락 사망사고는 처음이지만 번지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3월 경기도 가평군에서 30대 여성이 45m 아래로 떨어져 숨지는 등 몇 차례 사망사고가 있었다. 집라인 시공·운영 업체인 ‘집라인’의 정원규(42) 대표는 “자금력이라든가 안전 의식이 부족한 업체가 시설을 만들어 이용객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강 레포츠 기구의 허가·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은=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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