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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조와 일본 단가 '느낌' 나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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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생전의 손호연(앞쪽)씨와 장녀 이승신씨. 손 시인이 들고 있는 책자는 승신씨가 2002년 한국어로 번역한 시집이다. [중앙포토]

15일 일본 교토에선 60년 동안 일본 고유의 단가인 와카(和歌)로 한국인의 마음을 노래했던 시인 고(故) 손호연(1927~2003)씨의 뜻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한.일을 잇는 시조와 단가'를 주제로 한 이날 국제문화 포럼에는 가와이 하야오 문화청 장관 등 일본인 200여 명이 몰렸다. '일본의 노래'란 뜻의 와카는 31자에 시인의 느낌과 생각을 담는 정형시다. 17자로 이뤄진 하이쿠(徘句)와 더불어 일본인들이 가장 아끼는 국시(國詩)다.

손씨는 생전에 4년 간의 일본 유학시절을 빼고는 서울 필운동 한옥에서 한복을 입고 장독대를 바라보며 단가를 지었다고 한다. 총 2000편에 달한다.

"왜 하필이면 일본 단가를 부르느냐"는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단가 속에 담긴 원류는 바로 우리 것이라는 생각에서 단가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단가의 원형은 향가라는 생각에서다.

"치마저고리 곱게 단장하고 나는 맡는다/ 백제가 남긴 그 옛 향기를"이란 그의 작품이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일본 고단샤에서 출판한 6권의 시집 중 다섯 권의 제목은 '무궁화'다.

하지만 손씨는 민족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두 나라간의 우호와 평화에 대한 기원을 '사랑'이란 키워드를 통해 시에 담았다.

손씨의 작품세계가 양국에 보다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6월이었다.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열린 서울에서의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라는"이란 손씨의 단가를 읊으면서다. 고이즈미는 "손씨가 노래한 마음을 갖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토 행사에서는 손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 양국의 시인들이 일본의 와카를 한국의 시조로, 한국의 시조를 일본의 와카로 개조해 읊어보고 느낌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손호연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맏딸 이승신(갤러리 '더 소호'대표)씨는 어머니의 작품을 본인이 번역한 단가를 낭송하며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이웃해 있고 가슴에 가까운 나라 되라고/ 무궁화를 보다듬고 벚꽃을 보다듬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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