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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가계 빚 2150만원 … 출생률은 8.6명 사상 최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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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아기울음 소리는 갈수록 잦아들고 있다.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저성장의 함정이다. 한쪽에선 사상 최대 빚잔치가, 다른 한쪽에선 사상 최저 출생률이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빚 부담이 출산율을 더 내리누르고 이는 다시 빚을 갚아야 할 미래 세대를 감소시키는 악순환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2014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조(粗)출생률은 8.6명이었다. 전년에 이어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이어갔다. 비공식 자료인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감안하면 조출생률이 역대 최저다. 통계청 관계자는 “2013년 조출생률은 8.63이었지만 지난해는 8.6 밑으로 내려가 반올림한 수치”라며 “의무 출생 신고 기한을 넘겼다가 나중에 출생신고를 한 사람을 합치더라도 최저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균 산모의 연령이 점점 높아지면서 둘째를 낳지 않는 현상도 갈수록 굳어지고 있다. 지난해 평균 출산연령은 처음으로 32세를 넘겼고 둘째 출생아 수는 16만5400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20대 출산율은 감소하고 30대 출산율은 증가하는 추세가 이어졌다. 40대를 포함한 35세 이상 고령산모 구성비도 21.6%로 1981년 통계 집계 후 매해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는 1.21명으로 전년보다 0.02명 증가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이 2.1명을 기록해야 인구가 줄어들지 않는다. 한국은 82년 이래로 한번도 합계출산율이 2.1을 넘어보지 못했다.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되는 합계출산율 1.3 기준도 2001년 진입해 14년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은 이런 추세로 가면 2030년 국내 총인구가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래 인구는 줄어만 가는데 갚아야 할 빚은 급속도로 불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말 가계 빚(가계대출+판매신용)은 1089조원에 달한다. 국민 1인당 2150만원이 넘는 빚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한은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래 최대 액수다. 지난해 8월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부동산 대출 규제를 풀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하면서 증가 속도는 더 빨라졌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가계부채는 29조8000억원 늘어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달마다 10조원씩 빚이 불어난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이날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런 위기의식에서다. 연 2%대 금리의 ‘안심전환대출’을 다음달 24일 출시하기로 했다. 변동금리 대출을 2.8% 안팎의 고정금리 대출로 추가 비용 없이 갈아탈 수 있는 상품이다. 금리는 10·15·20·30년 등 만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신청 시점을 기준으로 ▶1년 이상 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택가격이 9억원 이하이고 ▶대출금이 5억원 이하일 때 이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가계 빚 폭탄의 뇌관이 제거될지는 미지수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자본금을 늘리고 주택저당증권(MBS) 발행으로 위험을 분산한다 하더라도 결국 ‘빚 돌려 막기’이긴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에 따라 일찌감치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사람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인다. 명지대 조동근(경제학) 교수는 “정부 통계에 제대로 잡히진 않지만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생활자금으로 쓰는 가계가 늘고 있다. 가장 위험한 신호”라고 말했다. 동국대 강경훈(경영학) 교수는 “정부의 규제 완화에도 은행 대출을 갈아타지 못하는 저신용자는 저축은행·사채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부실이 생길 수 있는 만큼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진석·조현숙 기자, 세종=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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