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 청소기 속으로 돈이 빨려들던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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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1980년 원숭이띠 동갑내기인 나진호씨와 안완기씨. 두 사람은 25세 젊은 나이에 벌써 사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명함을 받아든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묻는다. "'푸르른 계단 양천지점'이 뭐 하는 곳이죠." 그러면 두 사람은 "계단 청소를 해주는 회사랍니다"라고 대답한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 그런 일을…."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나씨 등에게 동정 어린 눈길을 보낸다.

"처음엔 무척 힘들었습니다. 부모님이 '힘든 일을 왜 하느냐'며 반대했죠."(나진호씨.사진(左))

"친구들에게 명함을 돌리면 '버젓한 회사를 그만두고 하는 게 겨우 청소냐'고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안완기씨.사진(右))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신세대들은 대기업을 선호하고 있다. 또래들이 이름 있는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백수 생활을 감수하는 동안 나씨와 안씨는 '3D 업종'으로 분류되는 청소 대행업에 뛰어들었다. 부평공고와 인하공전을 함께 다닌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 자동차 엔지니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들이 드라이버를 버리고 걸레를 집어든 사연은 이렇다.

2002년 군에서 제대한 안씨는 호주로 어학 연수를 갔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려고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엔 식당일을 돕다가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청소 대행업 아르바이트로 옮겼다. 안씨는 "호주의 청소 대행업이 아주 체계적이어서 놀랐다. 사무실.식당.창고 등 세분화해 각각에 맞는 청소를 해준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가정에서도 청소를 맡기는 것을 보고 그는 무릎을 쳤다. 언젠가는 청소 대행업을 하리라 마음먹은 안씨는 귀국한 뒤 엔지니어로 직장에 근무하다 올해 9월 창업을 결심했다. '젊었을 때 아니면 모험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템을 청소 대행업으로 정한 그는 절친한 친구인 나씨를 끌어들였다.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끈질기게 사업 전망을 설명해 나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사람은 특화 전문 서비스가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며 계단청소 전문 프랜차이즈를 골라 창업했다.

이들의 일과는 보통 오전 6시30분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청소를 한다. 계단.복도.창문.엘리베이터.주차장 등이 작업 공간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인 초극세사로 만든 걸레에 친환경 세정제를 묻혀 계단 등에서 미는 게 가장 큰 일이다. 먼지는 비로 쓸지 않고 진공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문이나 복도에 붙여진 각종 스티커를 떼어내기도 한다. 창문이나 난간도 걸레로 닦아준다. 7층 이하 건물만 맡기 때문에 보통 한 건물을 청소하는 데 30~40분 걸린다. 하루 두세 건을 끝낼 경우 오후 2시쯤 된다. 이때부터 열심히 전단지를 돌리며 홍보 활동을 한다. 나씨는 "생각보다 청소일이 힘들지 않다. 회사에서 잘릴 걱정도 없고 상사의 눈치를 안 봐도 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안씨는 "젊기 때문에 나이가 지긋한 고객을 상대하는 게 아직 어렵다"고 말했다.

털털한 성격의 나씨와 꼼꼼한 편인 안씨가 서로 도와줘 사업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계약한 건물은 모두 60여 동.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청소를 한다. 한 달 매출은 평균 450만원 정도다. 아직 예전에 직장에서 받던 월급보다는 적게 번다. 안씨는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 단 그 시간을 얼마나 단축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가끔 고객이 간식이나 음료수를 가져다 줘 피로를 덜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깨끗이 청소된 계단을 보고 환하게 웃는 고객의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꼭 성공해 직업에 대한 편견을 깨 주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엔 친구들이 우리를 보고 비웃기도 했지만 이젠 사장이라고 부러워하네요. 어떤 친구는 합류할 수 없느냐며 진지하게 묻습니다."(나씨)

"몸은 고되지만 청소 대행업은 전문 서비스 업종으로 전망도 좋고 업종 경쟁력도 있습니다."(안씨)

이철재 기자

◆ 청소대행업 성공 전략

①프랜차이즈 본사를 고를 때는 꼼꼼하게 따져보자. 내부 조직이 안정적인지, 시스템이나 매뉴얼이 잘 갖춰져 있는지, 본사가 조직적으로 영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 등.

②평범한 장비를 이용해서는 전문가라는 인상을 주기 어렵다. 첨단 세정제와 설비를 도입하자.

③지속적인 광고와 홍보가 성공의 관건이다. 전단지를 배포하거나 지역정보지에 광고를 실어 꾸준히 소비자에게 알린다.

④서비스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 특성상 한 번 이용해 본 고객의 소개로 추가 주문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집을 청소한다는 마음으로 일하자.

⑤입지 선택을 잘해야 한다. 다세대나 다가구 주택 밀집 지역 10층 이하의 상가 혹은 빌딩 밀집 지역이 좋다.

<자료: fc창업코리아>

청소대행업 전망은

나진호씨와 안완기씨의 창업 사례는 두 가지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선 아이템.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선 청소 대행업과 같은 3D 업종이 전문 서비스 사업으로 발전했다. 국내에서도 웰빙 열풍이 분 뒤 위생과 청결,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런 점에서 3D 업종의 시장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처럼 3D 업종에 도전하는 젊은 세대를 찾기 힘들다.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사회 인식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3D 업종은 대부분 기술 중심형 아이템이 많다. 굳이 점포가 필요하지 않아 비교적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다. 마진율이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므로 창업시장에 뛰어드는 젊은 세대들에게 유리한 편이다. 자본과 경험은 부족하지만 체력이 강하다. 또 일한 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단 기술 습득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노동 강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 하나는 두 사람의 도전정신이다. 요즘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어렵게 취업의 문을 뚫어도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많다. 그래서 취업 대신 창업의 길을 택하는 20대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그러나 창업의 길은 멀고 험하다. 단순히 현재의 어려움을 피하려고 창업하는 것만큼 무모한 게 없다. 젊을 때부터 사업가로서의 목표를 확고하게 갖고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단 이때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안완기씨는 자기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청소업의 시장성을 파악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전략을 세워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안씨처럼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왜 창업을 하는가'를 먼저 묻고 장기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보도록 하자. 로드맵이 그려졌다면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청년 창업자는 경험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창업 인턴십 프로그램이나 아르바이트 등을 한 뒤 창업하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강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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