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 전면 개정 출발부터 '삐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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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에 대해서도 국제적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계속해서 강한 제재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초가삼간 지키려다 기와집 망가지는 걸 보고 있는 셈이다."(열린우리당 이광철 의원실 관계자)

"정부나 여당에서 저작권법 개정과 관련해 시민단체를 공식적으로 만나 논의한 적이 없었다."(문화연대 선용진 사무처장)

20년만의 저작권법 전문 개정을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난달 8일 공청회를 연데다 음원 제작자 등 권리자 보호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주장이 논란의 쟁점이다.

1957년 제정된 저작권법은 86년 전면 개정됐고 이후 다섯 번에 걸쳐 부분 개정됐다. 여러 번에 걸친 개정 탓에 전체적인 내용과 체계가 흐트러져 있고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기반 저작물 등 새로운 이용 형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의견수렴 부족= 충돌은 지난달 8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불거졌다. 문화연대 선용진 사무처장은 "공청회 전날 저녁 발제자들에게만 법안을 공개했다. 이런 상황이면 말이 공청회지 형식적인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측 관계자는 "계속 뜯어고치고 있는 것을 중간에 드릴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문화관광부안을 갑자기 의원입법으로 전환한 배경에 대한 의혹의 시선도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문화연대.미술인회의 등 93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29일 "복잡한 정부입법절차를 회피하고, 최대한 단기간에 졸속으로 처리하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든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접근법의 차이= 정부와 여당은 산업적 입장에서, 시민단체는 정보공유의 문제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들(시민단체)은 저작자의 권리가 충분히 보호되고 있다고 보고, 우린 미비하다고 본다"(이 의원실 관계자)

"저작권법은 창작자 뿐 아니라 이용자의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 지금 개정안은 지나치게 산업적 이해에 치우쳐 있다"(문화연대 선용진 사무처장)

그 예로 신설된 대여권을 들 수 있다. 작가들의 저작권료인 인세 뿐 아니라 대여료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저작권자 입장에서 과거에는 판매를 통해 인세 수익을 냈다면 요즘은 대여점과 도서관이 많아지면서 인세 수입이 줄었다는 점, 대여점에서 버는 돈이 창작자들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대여점 등의 거센 반대에 봉착하자 여당도 주춤했다. 대여권 관련 조항은 수정안에선 빠질 전망이다.

◇인터넷상 사적 공간은?= 개정법안은 인터넷상의 사적인 블로그, 카페나 공공기관의 홈페이지를 막론하고 적용될 예정이다. 선용진 사무처장은 "개인적.학술적.비영리적 목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하는 경우 면책 사유가 됐지만, 앞으로는 개인 공간까지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게 돼 지나치게 엄격하다. 구별해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실 관계자는 "홈페이지가 워낙 많아 가려 단속할 수 없다. 개인 입장에서는 자기 홈페이지에 비영리적으로 배경음악을 올린 것이겠지만 저작권자 입장에서는 그런 홈페이지가 수천만개다. 이는 국제조약에도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시민단체측은 온라인상 사적 공간의 개념이 설정되지 않아 앞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격권 신설= 개정안에 따르면 작곡가나 연출자 외에 가수나 배우 등 실연자들이 인격권을 새로 부여받는다. 실연자는 자신의 실연에 이름을 표시할 수 있는 성명표시권과 자신이 실연한 내용과 형식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동일성 유지권을 보유한다. 이를테면 본인 동의 없이 패러디를 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해 업계는 현실을 무시한 행정편의적 법률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청각 실연자의 인격권 인정은 세계실연음반조약(WPPT)도 인정하고 있지만 시청각 실연자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이를 인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광철 의원 등은 의견수렴을 거친 후 이르면 4월말이나 5월초쯤 새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는 의원들이 별도의 조율 없이 이달 안에 개정안을 발의하면 이에 맞서 국회에 제출할 대응법안을 만들고 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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