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프랑스 톨레랑스의 실패 … 문명 충돌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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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프랑스 소요사태가 3주일째로 접어들었다. 프랑스 정부의 비상사태 선언에도 불구하고 차량 방화 등 프랑스 전역으로 번진 소요의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고 있다. 이번 소요는 프랑스의 정치.경제.사회.역사적 각종 문제가 복잡한 함수관계를 형성하며 유례 없는 무정부주의적 폭력사태로 비화했다. 프랑스는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10일 프랑스의 세계적인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을 파리 근교 불로뉴 비양쿠르시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나 얘기를 들었다.

-프랑스는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다. 또 '자유.평등.박애'의 나라다. 과거 미국에서나 보던 이런 사태가 프랑스에서 일어난 것을 어떻게 보는가.

"25~30년 전부터 프랑스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첫째로 이민자가 프랑스의 인종.문화적 구성을 변화시켰고, 둘째로 프랑스 경제가 침체돼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졌다. 셋째로 국가의 역할이 많이 약화됐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런 변화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현재의 폭력사태는 시간이 흘러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프랑스를 이끌어갈 수 없다는 것이 확연해졌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 보는가.

"'국가 부재'다. 대도시 외곽 이민자가 모여 사는 지역은 흔히 '부족(部族) 성향 지대'라 불리는데, 이러한 지역은 경찰도, 행정당국도 함부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무법지대'가 돼버렸다. 경찰노조는 빈민층 거주지역에 들어가는 게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고, 정부도 이를 용인해 왔다. 최소한 20년 전부터 국가가 이런 지역들에 대한 책임을 방기해 온 셈이다. 이 지역에서는 암시장이 발달하고 공화국의 기본 원칙이 존중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가 부재로 이러한 지역에서 폭력 문화가 확산된 것이다."

-당신은 프랑스가 이민자의 사회통합에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물론이다. 완전한 실패다. '개인'에 바탕을 둔 프랑스식 통합 모델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왔다. 그래서 나는 15년 전부터 미국식 '어퍼머티브 액션 (Affirmative Action.소수인종 등 사회적 약자 보호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나로서는 현재의 사태가 하나도 놀라울 것이 없다. 프랑스식 통합 정책이란 것은 알맹이 없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네덜란드.독일.스페인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무슬림 이민자가 주요한 사회문제로 부각하고 있다. 유럽에서 기독교와 이슬람 간 문명 충돌이 시작된 것인가.

"문제의 핵심은 무슬림과는 무관한 것이다. 비록 이민자의 80%가 무슬림 출신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슬람교를 실천하고 있는 이민자의 비율은 매우 낮다. 이론적으로 이들은 무슬림이지만 이들이 이슬람교의 교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진짜' 무슬림은 이번 사태에서 자제를 촉구했다. 폭력을 일으킨 쪽은 무슬림이 아니다. 폭력사태의 원인을 이슬람에서 찾는 것은 문제를 잘못 짚은 것이다. 이슬람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들 젊은층이 좋은 무슬림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좋은 무슬림이었다면 사회의 규칙을 존중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유럽도 그다지 기독교적이지 않다. 흔히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이라고 말하지만, 문제는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이번 소요사태의 중심에 있는 젊은이들은 무슬림이 아닌가.

"우선은 이번 사태가 무슬림이 아닌 무슬림 출신 이민자의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무슬림과 무슬림 출신이라는 것은 별개다. 이민자 청년층의 정신세계에서 이슬람교가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미약하다. 이들은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세대고, 이슬람 문화보다 미국 흑인에게 훨씬 친근감을 느끼는 세대다. 이들이 지표로 삼고 있는 문화는 미국 흑인문화다. 이들은 미국 흑인처럼 옷을 입고 미국 흑인의 랩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이들이 이슬람과는 무관하게 행동했다는 점,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사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이들 청년층은 말하자면 이슬람의 자식이라기보다 지구촌의 시민이고, 세계화의 산물이다."

-이번에 드러난 이민자에 대한 차별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가.

"현재 이들 이민 계층을 짓누르는 세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는 프랑스 경제의 침체로 이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국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들이 프랑스에 살면서도 준법의 중요성을 체득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는 것이다. 셋째,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현실적으로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본토박이들은 그동안 프랑스가 많은 변모를 겪어 이제는 백인 프랑스인뿐 아니라 흑인 프랑스인, 아랍인 프랑스인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즉 40세 이상의 연령층은 프랑스가 이제 완전한 다민족 국가, 다문화 국가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가 바뀌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지식인의 자기반성 없이는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 프랑스처럼 분배를 중시하는 사회모델을 가진 나라는 성장을 중시하는 나라에 비해 기본적으로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것 아닌가.

"프랑스 모델은 25년 전부터 병을 앓고 있다. 프랑스 모델은 노인층을 위한 모델이다. 프랑스는 노인 수도 많고, 노인이 권력을 쥔 나라다. 따라서 노인에게는 프랑스의 시스템이 아주 훌륭한 것이다. 노인을 위한 사회보장도 잘 돼 있기 때문에,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프랑스에서 노년을 아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노인에게 유리한 모델은 젊은층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프랑스 사회는 유동성이 적은 사회다. 좋은 학위가 있는 백인 젊은이조차 괜찮은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 만일 하층 출신이라면 더더구나 쉽지 않다. 기준점이라 할 수 있는 '늙은 부르주아'로부터 멀어질수록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는 위선적인 사회다."

-우파가 주도하는 프랑스의 정치지형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사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지난 20년을 돌이켜볼 때, 우파나 좌파나 엇비슷한 기간 동안 권력을 잡았다. 좌파가 권력을 갖고 있을 때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회 통합이나 경제와 관련해 프랑스식 모델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품은 쪽은 우파,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지, 좌파가 아니다. 좌파는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면서 프랑스식 모델을 고수하려고 했다. 겸허한 반성이 시작된 곳은 오히려 우파 쪽에서다."

-프랑스와 미국 이민자 정책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프랑스 모델과 미국 모델은 대척점에 있다. 프랑스 모델은 모든 개인이 평등하며, 교육을 통해 공화국의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미국식 '어퍼머티브 액션'은 개인을 하나의 개체로 보지 않고 집단공동체의 일부로 본다. 사회의 하층 집단에 속하는 개인은 절대 본인 혼자 힘으로 주류 사회에 통합될 수 없다. 프랑스 모델이 출발점에서의 평등을 강조하는 반면 미국 모델은 도착점에서의 평등을 강조한다는 점이 두 모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도 미국 모델로 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 몇몇 그랑 제콜(프랑스 고등교육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미국식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기 소르망은 …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61)은 1944년 프랑스 로테가론 지방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출생했다. 64년 파리정치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69년 프랑스 엘리트 행정관료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도 졸업했다. 정치.문화.사상의 충돌 현상을 깊이 연구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가 새뮤얼 헌팅턴과 문화 충돌을 주제로 벌인 전면적인 논쟁은 유명하다.

2000년까지 30년 동안 파리정치학연구소 교수를 지냈다. 이후로도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베이징 대외무역대, 모스크바대 등에서 초빙을 받아 강의와 연구활동을 계속했다. 지금은 그가 살고 있는 파리 근교 불로뉴 비양쿠르시 문화담당 부시장으로 11년째 재직 중이다. '최소국가'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 '자본주의 종말과 새 세기' 등 2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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