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너무많으면 자주적 선악 판단능력 잃어|법령ㆍ준칙ㆍ지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월전에 어느 선배어른의 따님 결혼식이 있었다. 평소에「특별한 성품」으로 알려진 그분은 물론「고지서」를 돌리지도 않았고 친지들에게조차 전화로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분은 가정의례준칙을 지키려한 것이 아니었다.
그뿐아니라 그 결혼식의 안내석에는 방명록만 놓여 있었으며 그 앞에는『죄송하나 일체의 축의금은 사절합니다』라는 팻말이 적혀있었다.
돈이 남아도는 재벌댁 결혼식에서나 더러 볼수 있지 보통 식장에서는 전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모든 하객을 깜짝놀라게 만든 일은 따로 있었다. 신부가 입장할때 으례 옆에서 함께 걸어들어와야할 신부아버지가 그냥 가족석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만약 신부에게 아버지가 없다면 아저씨든 오라버니가 대신 아버지노릇을 하는게 관례다.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계신데 신부가 혼자 입장한다는 것은 전혀 우리네 상식밖의 일이었다. 『과연 대단한 분이군.』오랫동안 신부아버지와 사귀어온 한 하객이 중얼거렸다. 내가 듣기에는 그것은 감탄섞인 놀라움이었다.
결혼이란 부모의 보호권을 벗어나서 완전히 독립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 떳떳하고도 자랑스런 첫출발에 아버지의 부축이 필요하지는 않을것이다.
아버지의 부축에는 딸을 새사위에게 인도한다는 뜻도 있겠고,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의무가 이제 끝난다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결혼하는 날까지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하다면 그 신부에게는 독립의 자격이 없다고 봐야 옳다. 그렇다면 결혼하는 첫날부터 신부를 혼자 걸려들어가게 하는게 마땅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기네 힘으로 자기네 세계를 구축하려는 신랑·신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진정한 축하와 격려뿐이다.
그들에게는 그 어떠한 지팡이도 필요없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그 선배어른은 축의금도 마다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 성격이 유별난게 아니라 그분을 유별나게 보는 세상사람들의 눈이 이상할 뿐이었다. 그만큼 우리 모두가 속기에 젖어 있는 오늘이다. 앞으로도 그런 결혼식은 보기어려울것이다.
만약 내가 내 딸을 시집보낼 때는 어떻게 할까하고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남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내게는 귀여운 딸이요, 자랑스런 신부감이다. 그런 딸이 결혼하는 날 세상에 널리 알려 되도록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게하고 싶을것이다. 시댁에 흉잡히지 않을만큼 혼수감도 끊어주고 싶을것이다. 하례객들로부터 축의금만 받은채 그냥 돌려보낸다는 것도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가「호화결혼식」인지는 모르지만 일생에 한번밖에 없을 혼례에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섭섭하지 않게 딸을 시집보내고 싶기도 할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 선배어른의 본을 떠서 모든 격식을 떠나서 정말로 알찬 결혼식을 올려주고도 싶다. 허례와 허식으로 딸의 출발을 더럽혀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딸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 물질일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쪽을 택하든 그것은 순전히 나와 내딸의 양식에 입각한 판단에 의해서래야할 것이다. 법에 어긋난다고해서 결혼식을하고 싶은데도 못올리게 되어서는 안될것이다.
사치며 허식을 물리친다는것 자체는 틀림없는 미덕이다. 그러나 미덕은 법으로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법이 미덕을 만들어 내는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툭하면 법을 만들고 법을 내세운다. 그리하여 우리의 손발을 묶고, 우리의 숨을 죽이게 하며, 우리 길을 가로 막는게 너무나도 많다고 여기게 만든다.
법령·준칙·지침등의 범람은 우리로부터 자주적인 선악판단의 능력을 앗아가고 있다.
공자는 다음과같이 말하고 있다.『위정자가 권력을 내세워가며 법률만능의 정치를 하면 백성은 법률의 맹점을 찾아 법망을 벗어날 궁리만하는 몰염치한 사탕들이 될 것이다. 철저한 덕치주의에 입각해서 예를 바탕으로 해가며 질서유지를 도모한다면 백성은 염치를 알게 될 것이며 부정을 하지 않게될 것이다.』
노자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덕의 위에 선 사람은 애써 덕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진정한 덕이 된다. 덕의 밑에 있는 자는 덕이 되려 애쓴다. 고로 덕이 못된다.
그리고 법령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범죄자는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두 군자의 말을 인용한 다음에 사마천은 법령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한 수단일뿐이며 선악을 통제하는 근본이 될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있다.
그에 의하면 진나라때처럼 법망이 전국에 빈틈없이 깔려있던 시대도 드물었다. 그래도 범죄를 막을길이 없게되자 관리들은 책임회피에 백성은 법의 눈을 속이는데 급급하게 되어 끝내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한다.
물론 엄하게 법으로 다스려야할때도 있다. 촉상의 제갈공명은 승상자리에 오르자 너무나도 엄격하게 법을 적용시켜 나갔다. 이를 보다 못해 그의 참모였던 법정이 다음과같이 충고했다.
『옛날에 한의 고상는 주나라의 서울함양을 함락시켰을때「법삼장」을 포고함으로써 진나라의 가혹한 정치에 시달려오던 백성으로부터 환영을 받았읍니다. 당신도 이런 본을 따라 법을 완화시켜서 백성의 인기를 얻으시면 어떻겠습니까』
여기대하여 공명은 대답하기를『자네는 하나를 알고 둘을 모른다. 진의 무도한 정치로 인하여 백성이 고통받아왔기에 고상는 법을 완화하여 백성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천하를 장악하게되었다.
허나 촉의 전왕이던 유장은 은혜도 베풀지 않고 그렇다고 또 형벌을 내리는 일도 아닌 지극히 우유부단한 정치를 했다. 그리하여 신하나 국민이나 모두 해이해지고 끝내는 나라를 잃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란해진 기강을 바로잡기위해 법을 엄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다. 공명은 이렇게 법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굳이 새법을 만들려하지는 않았다. 법이 많으면 많을수록 범죄자는 늘어난다는 법의 역기능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 법은「대덕」을 바탕으로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강했다. 언제까지나 법만으로 다스릴수는 없다고 봤기때문이다. 법이라는 형식보다 더중요한게 정의의 정신이라고 믿었기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도 법의 효험만을 믿는나머지 자칫 법 이전의 문제를 잊고있다. 법의 목적을 잊을때도 많다. 나는 여기서 단순히 가정의례준칙만을 말하려 한것은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