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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법안은 국회서 낮잠 자고, 행정편의주의는 여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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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호 18면

인터넷에서 투자자를 모아 대출을 중개하는 업체 ‘8%’의 이효진(33) 대표는 최근 대부업 등록을 했다. 폐쇄당했던 사이트를 다시 열기 위해서다. 그는 8년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지난해 12월 ‘8%’를 열었다. 하지만 이 사이트는 개설 두 달여 만인 이달 2일 폐쇄됐다. 금융감독원이 8%를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을 한 불법 사금융 업체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우리의 사업 모델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 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폐쇄돼 당황했다”며 “이달 말 사이트를 다시 열면 당분간은 수수료를 받지 않는 베타 서비스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혹 되풀이될지 모르는 불법 사금융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지난달 ‘IT·금융 융합 지원방안’을 발표하며 핀테크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선 아직도 육성책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8%의 폐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8%는 다수의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아 특정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모델이다. 투자자는 소액을 투자해 일정한 수익을 올린다. 예를 들어 500만원 대출 건에 100명이 5만원씩 투자해 빌려주는 식이다. 대출금리는 평균 연 8% 수준이며 투자수익률은 연 5%가량을 목표로 했다.
핀테크 포럼 박소영 의장은 “8%는 대부업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며 “이런 새로운 사업을 하는 기업이 나오면 핀테크 육성 차원에서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먼저 고민해야 하는데 기존 규정에 따라 폐쇄부터 하는 건 행정편의주의”라고 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발언 후 정부는 전자상거래 간편 결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액티브X 보안프로그램 의무화를 폐지하도록 했다. 대안으로 ‘범용실행파일(.exe)’ 방식의 새로운 보안프로그램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사실상 반강제적이다.
익명을 원한 카드사 관계자는 “3월 초까지 시스템 구축을 마쳐야 하는데 시간도 부족할 뿐 아니라 기존 보안 프로그램과의 충돌 가능성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여기에 액티브X나 범용실행파일 방식의 보안프로그램 모두 ‘대문의 열쇠 장치’여서 거래를 위해서는 따고 들어가야 해 본질적으로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보다는 오히려 구매자의 카드 사용 패턴 등을 분석해 평소와 다른 이상 거래를 탐지하는 시스템(FDS)의 노하우를 쌓는 데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육성책의 상당 부분은 법 개정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법안이 국회에 묶여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게 크라우드 펀딩 활성화 방안이다. 정부는 크라우드 펀딩 활성화를 위해 투자 내용을 관리하는 ‘중앙기록관리기관’ 설립과 ‘온라인 소액투자 중개업자 등록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 법은 1년 넘게 국회에 묶여 있다. 투자자 보호 수준 등을 둘러싼 여야 대립 때문이다.

규제에 얽매인 핀테크 육성책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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