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 재판 받을 권리 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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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상고법원제 도입에 반대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해 상고법원제는 국민을 위한 제도라기보다는 대법원을 위한 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국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상고법원제는 대법원의 재판을 받고 싶은 국민의 여망을 부정하는 제도다.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통해 ‘대법원의 재판 받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국민의 마음속에는 이미 자신의 사건을 대법원에서 재판받고 싶어 하는 여망이 크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1년에 3만6000건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건이 대법원에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엄청난 사건 수를 이유로 대부분의 상고심 사건 처리를 대신해줄 상고법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이러한 상고사건 수의 폭증에 원인 제공을 한 당사자가 바로 대법원이라는 점이다. 법에 의해 대법원은 하급심의 법리 적용상의 오류를 따지는 법률심을 수행하게 돼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의 사실판단에 증거 채택이 잘못됐다는 ‘채증법칙 위반’을 구실로 사실판단에까지 관여해왔다. 그 결과 하급심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국민은 자연스럽게 대법원 재판에서 하급심 판결이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고, 이러한 기대가 1년에 3만6000건이라는 상고사건 수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건 폭증의 원인 제공을 한 대법원이 상고사건 수가 너무 많으니 따로 상고법원을 만들어 달라고 나서는 형국이다. 대법원은 상고법원 설치를 요구하기 이전에 앞으로는 절대 사실심에 관여하지 않고 법에 규정된 대로 법률심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둘째, 상고법원제를 도입하면 상고심 판결에 대한 국민의 판결 승복도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고 상고법원의 판결에 승복하지 못한 국민이 다시 대법원의 문을 두드리게 됨으로써 사실상 4심제로 심급제가 운영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물론 대법원은 상고법원의 판결이 대법원에 오게 되는 ‘특별상고’의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 그런 결과를 막을 것이라고 단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특별상고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미 엄청난 낭비다. 그리고 상고심 판결에 대한 국민의 승복률 감소는 법원 전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셋째, 상고법원제 도입은 우리 사법부의 병폐인 ‘사법관료주의’를 더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상고법원의 재판관들은 대법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하게 돼 있다. 우리 대법원장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권한이 너무 많아 ‘제왕적 대법원장제’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될 정도다. 3명의 헌법재판관, 3명의 중앙선거관리위원에 대한 지명권을 비롯해 전국 모든 판사에 대한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쥐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장에게 상고심 재판의 권한을 가진 상고법원 재판관에 대한 인사권까지 쥐여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법관 위계 서열의 상층부에 ‘상고법원 재판관’ 자리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은 수평적이어야 할 법관 조직을 더더욱 수직화·서열화시킬 것이고, 이로 인해 심화된 사법관료주의는 법관들이 국민을 보고 재판하기보다 자신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원 상층부를 보고 재판을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끝으로 상고법원제 도입은 우리의 사법 구조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다. 따라서 법률 개정이 아니라 헌법 개정을 통해 시도해야 할 사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상고법원 설치를 통해 대법원이 정녕 소수의 중요 사건 심리에 집중하는 정책법원이 되고 싶다면 국민 각계각층의 의사와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대법관 인적 구성의 다양화가 선결요건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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