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는 왜 주저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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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웅산국립묘지의 암살폭발같은 엄청난 참사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이 버마정부에 있다는것은 이미 여러차례 지적했다. 그리고 버마의 최고실력자 「네·윈」 장군도 전두환대통령에게 직접 사건의 책임이 버마에 있다고 시인하고 사과했다.
한나라의 국가원수를 포함한 국빈들을 맞아 경호에 허를 남겨 국가원수는 아슬아슬하게 위해를 면하고 수행원들이 다수 희생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초청국의 수치요 국제적인 위신추락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버마가 이미지상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길은 사건조사를 신속하고 철저히 하여 범인들의 정체와 배후를 밝히는 일이라는것도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우리가 오열을 삼키고 통곡소리를 낮추면서 버마정부를 원망하고 싶은 충동을 참은 것도 버마당국이 사건의쟁후 수습에 최대한의 성의를 다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지 한주일이 지나도록 버마가 북한에 의하여 저질러진 것이 확실한 사건전모를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는 크게 실망했다.
아웅산참사를 일으킨 것이 북한의 특수공작대라는 증거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기 그것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몇가지만 들어보자.
버마수사당국이 북한공작원을 체포하거나 사살한 현장에서 권총을 찾기도 전에 우리측 수사팀은 북한의 공작원들은 보통 벨기에제 0.25구경에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갖고 다닌다고 말해주었다.
그 뒤 버마수사당국은 바로 그런 권총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8월17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양형섭이 이끄는 친선사절단이 버마에 나타나 24일까지 인야레이크호텔에 묵고간 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9윌17일부터 24일까지는 북한이 버마에 세우는 도자기공장에 건설장비를 운반한다는 명목으로 「동건애국」호라는 3천7백톤짜리 선박을 랭군항에 정박시킨 사실을 간과할 수가 있을까.
이와같이 모든 정황과 구체적인 증거가 북한의 특수공작원들을 요지부동한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마당국은 사건직후에 수상한 거동을 하다가 혹은 검거되고 혹은 사살된 사나이들을 그냥「코리언」이라고만 표현할 뿐 북한인들이라고 부르기를 꺼렸다.
그러나 우리수사팀들의 협조로 버마의 수사당국은 아웅산참사가 북한이 한국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기도로 저지른 것이 확실하다는 심증을 굳히고 물증까지 잡았다. 남은것은 발표다. 그 발표가 늦어지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한반도를 전쟁직전의 위기로 몰고, 한국국민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겨과 슬픔을 안겨준 아웅산참사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버마가 무슨 정치적·외교적인 타산을 하느라 이렁게 발표를 늦추는 것인가.
북한사람들의 계획대로 전대통령에게 위해가 가해졌더라면 한반도와 그 주변은 또 한번 격동하는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버마가 모를리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과 버마관계가 새로운 차원에서 확대되기를 바란다. 버마도 오랜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이룩하려는 계획을 위해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랐던 것이다.
버마가 그들의 성역에서 북한이 저지른 동물적인 만행을 공개해야 하는 것은 한국-버마 관계의 개선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악랄한 테러행위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범죄집단이 국제사회의 어느 곳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한차원 높은 책임과 의무가 버마에 있는 것이다.
북한의 범죄집단에 의해서 주권을 침해당한 버마가 사건수사 결과를 발표하는데 혹시 북한이나 그 후견국들의 눈치를 살핀다면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은 말할것도 없고 국제적으로도 주체성 없는 나라로 치부되어 두고 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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