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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민이다] 이주여성 외로움 ‘난타’… 봉사 기쁨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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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주다문화가정센터 김정림(왼쪽 셋째) 사무처장과 이주여성 회원들이 10일 난타 연습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혈혈단신 제주도로 시집온 이주여성들은 하나같이 외로움을 많이 탑니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그래서 우리들끼리 마음의 위안을 얻자며 모이게 됐죠.”

 김정림(44·사진) 제주다문화가정센터 사무처장의 하루는 제주 이주여성들이 생면부지 이국 땅에서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하며 생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 동포인 김씨는 일본 유학 때 만난 남편과 결혼해 2006년 제주에 정착했다. 낯선 땅, 그중에서도 최남단 제주도로 시집온 그는 결혼 초기엔 외로움에 우울증까지 생겼다.

 그러던 중 주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이주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함께 모여 수다도 떨고 각국 고유의 음식도 나눠 먹으며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좀 더 체계적으로 활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 2008년 다문화가정센터를 꾸리게 됐다.

 이후 그는 이주여성의 제주 생활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미용 강좌를 개설한 데 이어 문화관광 통역해설사, 요리교실, 컴퓨터 강좌, 바리스타 실습 등 이주여성들 스스로 배우고 싶어 하는 강좌들을 잇따라 개설했다.

 특히 거의 모든 이주여성들이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시어머니와 대화 자체가 힘들어 어려움을 겪는 데 착안해 마련한 제주도 사투리 교실은 최고 인기 강좌로 자리 잡았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가사와 농사에 바쁜 이주여성들도 센터를 찾았고 지금은 2400여 명까지 회원이 늘었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전체 이주여성 3000여 명 중 80%나 회원으로 가입한 셈이다.

 김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회원들과 함께 사회적 약자를 돕는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소속감도 갖게 해주고 제주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매달 셋째 일요일마다 요양원·경로당 등을 찾아 수발도 들고 말벗도 해주고 있다. 난타 공연도 익혀 도내 각종 행사에서 실력도 뽐내고 있다.

 김씨는 강인한 제주 여성 못지않은 ‘당찬 아줌마’로 통한다. 정보기술 전문강사 자격증과 한국어 교원 자격증 등 자격증만 20개가 넘는다. 센터 초기 강사를 구하기 힘들 때 본인이 직접 이주여성을 가르치기 위해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제주도에서도 이주민 출신 도의원과 공무원이 나오는 날을 꿈꾸며 다문화가정과 이주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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