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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엔 “언론인들, 내가 교수도 총장도 만들어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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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선서하고 있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언론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깊이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10일 오후 3시14분 1차로 중단됐다. 이 후보자가 지난 1월 27일 일부 기자와의 오찬에서 했다는 ‘언론 통제’ 발언과 관련해 여야가 정면 충돌하면서다.

 한 시간 뒤인 오후 4시15분.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진선미 의원 등 청문위원 여섯 명이 인사청문회장을 나와 정론관(국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곤 언론 통제 관련 발언이 있는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녹음 파일은 당시 식사 자리에 있었던 한국일보 기자가 이 후보자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녹음한 것이었다. 해당 기자는 이 후보자의 발언을 담은 파일을 새정치연합 김경협(인사청문위원)의원실에 건넸다. 새정치연합은 일부 공개된 오찬 발언 외에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발언 내용을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것이다. 녹음 파일엔 “내가 언론인을 대학 총장이나 교수로 만들어줬다”거나 “김영란법을 통과시켜 기자들도 검경에 붙잡혀 가는 것을 당해봐야 한다”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야당 청문위원들은 이날 오전부터 이 후보자의 언론 통제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이 후보자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하겠다는 작정을 하고 나온 셈이다. 특히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이 후보자의 ‘총장 임명’ 발언과 ‘김영란법안’에 대해 어떤 발언을 했는지를 물었다. 이 후보자는 “ 통렬히 반성한다”면서도 오전만 해도 야당이 확보하고 있던 녹취록과 다른 답변을 내놨다. 공교롭게도 이 후보자를 방어하려던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질의 과정에서 녹취록과 다른 답변이 나왔다.

이완구 후보자가 10일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피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후보자는 보기 드물게 언론의 기능과 자유를 중시하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한다.”

 ▶이 후보자=“김영란법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돼 언론의 자유와 알권리가 침해되면 안 된다고 해서,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 입장을 표한 기억이 있다.”

 그러자 이미 녹취록의 내용을 알고 있는 야당 의원들이 질문에 나섰다.

 ▶김경협 의원=“혹시 언론인 중 교수나 총장을 만들어주신 분이 있나?”

 ▶이 후보자=“제가요? 없다. 제가 무슨 힘으로 총장을 만들겠나.”

▶새정치연합 유성엽 의원=“‘내가 총장도 만들어주고 교수도 만들어주고’라는…. 이렇게 말한 기억이 없나.”

 ▶이 후보자=“없다. 제가 기자분들과 그런 얘기를 할 리가 있겠나.”

 ▶유 의원=“틀어 드릴까요?”

 ▶이 후보자=“네, 분명히 없다.”

 야당 의원들은 “그렇다면 (우리가 확보한) 녹음 파일을 인사청문회장에서 공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여당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음성 파일을 튼 전례가 없고 불법적으로 녹취·취득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국회에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계속 녹음 파일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새누리당 소속의 한선교 인사청문특위원장은 이 후보자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후보자는 “한 시간 반을 얘기했다. 일일이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일 이후로 수일째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고 기억이 정확하지는 못하다. 한 시간 반 동안 대단히 혼미한 상태에서 했기 때문에 기억 상태가 조금은 정상적이지 못하다. 착오나 착각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혀 기억이 없다”던 답변의 번복이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장을 떠나 정론관에서 녹음 파일을 공개하고 돌아왔다. 한 위원장은 “녹음 내용 공개는 심히 불쾌하고 유감스럽다”고 했다.

 녹음 파일 공개 후 여야는 취재 윤리·짜깁기 편집 등을 놓고 공방을 거듭했다.

 유성엽 의원은 “녹음도 취재 방식이고, 설령 (녹취 보도를) 비난하더라도 총리 후보자의 언론관 문제와는 별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일부 내용을 삭제·편집하고 짜깁기됐다는 제보가 오고 있다”며 “만약 짜깁기해 공개했다면 이는 정치 공세용”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여당 의원들이 오히려 후보자를 전혀 안 도와주고 있다”며 “여당이 짜깁기 의혹을 제기하겠다면 1시간30분 정도 되는 전체 분량을 다 들어보자”고 맞대응했다. 취재 윤리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청문회는 정회를 거듭했고, 파행으로 치달았다.

글=강태화·위문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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