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명사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공산권 연구를 가로막는 난관의 하나는 그 지도자들의 인물됨됨이를 아는 일이다. 성장 배경·교육·경력등이 베일에 가려있고때로는 날조된다.그들의 사고기준이나 행동양식을 짐작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북한에 관한한 모든 것이비밀이다. 북한인물연구는 거기에「연구」라는 말을 붙이기가 곤란할 정도다.
이런 자료의 제약 속에서 중앙일보가 내놓은 북한인명사전은 북한인물연구에 어떤 가능성을 엿보이게한다. 수록된 인물이 모두3천2백66명. 현재 활동중이거나 종적을 감춘 인물이 모두 망라돼있다.
북한에서는 이미 호적제도가 폐지됐고 이름도 한글전용이다.한국인명을 추적하는 데는 큰 장애요인이다. 동명이인이 수두룩하게 나오고 남녀구별이 모호할때가 많다.
예를들어 남자 「이화선」은 노동당중앙위 후보위원이고 국제사업부부부장이다.
여자 「이화선」은 최고인민회의대의원, 74년까지 삼석협동농장관리위원장을 지냈다. 더구나 지금 북한에선 세대교체중이다. 우리가 아는 인물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그것은 세월탓만은 아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유일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숙칭됐기 때문이다.
그가운데 새로운 인물들이 떠오른다. 예를들어 「이영수」라는 젊은이. 72년 공업기술총연맹 부위원장으로 등장했다. 엔지니어 출신인것같다. 이 친구는 무슨 때만 되면 한국을 헐뜯는데 앞장서 왔다. 80년에 드디어 사노ㅊ청위원장으로 승진됐다.
사노청이란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의 약어다. 적치하 서울에서도 극성을 떨었던 「민청」 (민주청년동맹)의 후신. 지금은 노동당의전투력 후비대.공산주의 건설의교대자로 불린다.
일본에 입국만 하면 정치적 프로퍼갠더를 떠벌리는 현준극은 함남출신, 56년 노동신문 편집부장을지냈으니까 이른바 기자출신이다. 67년부터 10년동안 주중공대사를 지냈다. 지금 직책은 어마어마하다. 노동당 중앙위원, 국제사업부부부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외문화연락위 부위원장이다.
어렴픗이 떠오르는 이름들도 있다. 조상선. 전남출생의 판소리대가. 54년에 공훈배우, 59년에 인민배우. 65년까지 민족예술극장 소속 배우였다. 그 이후론 종적이 없다.
만담가 신부출. 57년에 노력훈장을 탔고, 작년까지 중앙방송위원회 만담가였다.역시 이후로 행적이 없다. 시인정지용. 한가닥연민의정을느끼게하는이름이다.
의용군에 끌려나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
포로교환때 북을 「선택」. 그 이후론 종적이 끊겼다. 우유부단한모더니즘의 시인이 살아 남기에는 북한의 문학풍토는 너무나 거칠다.
북한인명사전을 들여다보면 지나간 38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왜, 그리고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사전을 만들어야하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