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영어단어 공부 … 설레는 75세 새내기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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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의 학력인정 평생학교인 일성여고 최고령 졸업생 장늠이씨. 국가유공자 자녀를 대상으로 한 수시 전형으로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에 합격해 다음 달 입학을 앞두고 있다. [사진 일성여고]

“이렇게 나이 먹은 할머니가 ‘새내기’라니. 남세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죠.”

 오는 25일 서울 마포구의 학력 인정 평생학교인 일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장늠이(75·여)씨는 올해 최고령 졸업자다. 60여 년 만에 만학도의 꿈을 이룬 장씨는 올해 국가유공자 자녀를 대상으로 한 수시 전형에 합격해 다음 달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새내기 대학생이 된다.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장씨는 한국전쟁 때문에 다니던 소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폐허가 된 집에서 공부는 언감생심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15세의 나이로 겨우 소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지만 징집됐던 아버지가 전사하면서 중학교 진학이 어려워졌다. 결국 2남 2녀의 장녀였던 장씨는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2남 3녀를 모두 출가시킨 후에야 배움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소학교를 졸업한 지 57년 만에 장씨는 다시 펜을 잡았다. 2012년 충무로의 한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중등교육과정을 마치고 2013년 일성여고에 입학해 2년 만에 정규 고등학교 과정을 끝냈다. “남들은 그 나이에 어떻게 공부 하냐고 물었지만 60년 넘게 바라고 바랐던 일이었어요. 가족들이랑 말이 통하기 시작하면서 더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죠. 제 손자는 제가 모르는 영어 단어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저랑 짧은 영어로 대화하기도 해요.”

 외국어학부에 진학하는 장씨는 평소 공부했던 중국어를 전공할 예정이다.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국의 역사를 알리는 여행 가이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전공이다. 장씨는 “가이드의 꿈을 위해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한자와 중국어 간자체 공부를 해왔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유적을 소개하면서 잘못된 역사도 바로잡아 설명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요즘 역사 공부도 하고 체력도 기릅니다.”

 배움엔 끝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장씨는 앞으로도 계속 학업에 정진할 계획이다. 그는 “20대든 80대든 공부를 하면 젊은 사람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늙은 사람”이라며 “하늘이 부를 때까지 공부해서 늘 젊은 사람으로 살 것”이라고 했다.

 일성여중·고교에선 올해 장씨처럼 여러 사정으로 배움의 시기를 놓친 중학생 315명, 고교생 215명이 학업을 마치고 졸업한다. 올해 졸업하는 고교생 전원은 4년제(42명)·2년제(173명) 대학에 합격했다.

 김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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