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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보다 높은 60% 지급률 … 제 머리 못 깎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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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5일 국회 국민대타협기구 전체회의에서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인사혁신처가 5일 국민대타협기구 회의에서 공개한 공무원연금 개혁 기초안은 지난해 10월 새누리당이 발의한 법률안과 재정 절감 효과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공무원에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진전됐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좀 더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부 기초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 기초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연금 지급률을 새누리당안보다 높였다는 점이다. 연금을 계산할 때 적용하는 지수를 1년에 1.9%에서 1.5%까지만 낮추기로 했다. 새누리당안은 1.25%까지 낮추는 것인데 이보다 후퇴했다. 40년 공직 생활을 하면 새누리당안은 생애소득의 50%(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지만 정부 기초안으로 하면 60%를 받는다. 가령 평생 소득이 500만원이라면 새누리당안으로 하면 250만원인데, 인사혁신처안이 시행되면 300만원으로 올라간다.

 인사혁신처는 대신 퇴직금을 민간과 100%(새누리당안)로 맞추지 않고 지금처럼 최대 39%만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신규 공무원은 국민연금처럼 소득대체율이 4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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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안은 ‘퇴직금은 올리고, 연금은 깎고’인데 정부 기초안은 ‘연금은 후하게, 퇴직금은 지금처럼’이다. 어느 방안으로 가더라도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정부 기초안대로 하면 107만 명의 기존 공무원과 신규 공무원 간에 연금 격차가 더 벌어진다”며 “기존 공무원도 국민연금처럼 소득대체율을 40%로 깎아야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말도 안 되는 안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무원연금은 한 번 확정된 연금을 계속 지급하는 확정급여형인데, 저성장·제로(0) 물가 시대에 연금을 더 후하게 바꿈으로써 재정 안정성이 새누리당안보다 떨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새누리당안은 퇴직금이 민간과 같기 때문에 두 제도를 비교하기 쉽지만 정부 기초안은 어느 게 유리한지 비교하기가 어려워진다.

 기존 수령자들의 연금을 조정하는 방식을 바꾼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새누리당은 연금의 2~4%를 재정안정화 기여금 명목으로 깎기로 돼 있으나 인사혁신처는 2016~2020년 5년간 연금 동결로 바꿨다. 그 이후는 물가상승률 이하로 올리기로 했다. 연금동결안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검토했던 방안이다. 보사연 윤 위원은 “두 가지 안의 재정 효과는 별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정부 기초안은 단기 효과만 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납세자연맹 등의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은 새누리당안의 개혁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유족연금 지급률(60%)을 더 낮추고, 보험료 부과 소득 상한을 평균소득의 1.5배에서 1.3배로 낮추자는 것이다. 또 올해 57세인 연급 지급 연령을 2023년부터 늦출 게 아니라 조속한 시일 내에 국민연금처럼 61세로 낮추자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게 정부 기초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정부 기초안을 시행하더라도 새누리당안처럼 2080년에 연금부채가 여전히 836조원이 남게 된다. 17년 근무한 7급 공무원이 30년 동안 공직 생활을 할 경우 연금 수익비(낸 돈 대비 받는 돈의 비율)가 5.07배에 이르게 된다. 국민연금(1.8배)의 2.8배나 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부에서 새누리당안이 과격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깜짝 놀랄 정도로 가야 하고, 국민연금과 같은 수준으로 가야 하는데, 정부 기초안에 이것저것 숨겨진 것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글=신성식 선임기자, 김기환·신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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