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경제 4.4% 성장…자동차·PDP 등이 소비 불 지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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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살아나면서 3분기 중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대로 올라섰다.

한국은행은 3분기 중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성장세가 확대되고 수출과 민간소비가 늘어나 4.4%의 GDP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25일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4%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해 3분기(4.7%) 이후 1년 만이다. 또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은 1.8%를 기록해 2003년 4분기(2.8%) 이후 7분기 만에 최대였다. 김병화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경기가 2분기에 바닥을 지나 완만한 회복세로 접어들었다"며 "한은이 예상한 대로 하반기에 4.5%, 올해 전체로는 3.8%의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등 공신은 중상위 소득계층의 소비였다. 고급TV.컴퓨터.승용차 등 고가의 내구재 지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런 소비 덕에 지난해까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한 민간 소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나 증가했다.

한은은 수출 호조가 지속되고 민간 소비도 회복되면서 하반기 평균으로는 4.5%, 내년에는 5%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경기가 지표상으로는 회복 국면에 들어선 셈이다.

이런 시각은 민간경제연구소들의 전망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4일 "올 2분기부터 나타난 경기 회복세는 내수와 수출이 모두 호전된 결과여서 2000년 이후 어느 때보다 강하고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의 무기력증을 감안하면 3분기의 4.4% 성장은 5.0% 안팎인 잠재성장률에 근접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성장의 질이나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수출은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수출단가 하락으로 교역조건이 악화돼 우리 국민이 실제로 손에 쥐는 이익인 국내총소득(GDI)은 3분기 중 0.2%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1~8월 중 경상수지(175억 달러)도 전년 동기의 절반 수준(97억달러)으로 줄었다.

경상수지 흑자 폭이 줄어드는 가운데 유가와 환율 상승에 따라 물가가 오를 경우 언제든지 경기회복의 발목이 잡힐 수 있다. '8.31 부동산종합대책'의 후유증이 예상보다 커질 경우 소비 회복세가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김영종 비자코리아 사장은 "경제는 심리인 만큼 정치.사회적 혼란이 되풀이될 경우 이제 지갑을 열기 시작한 소비자들이 다시 움츠러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소비, 누가 어떻게 이끌었나

최근 경기 흐름에서 지난해와 뚜렷이 차별되는 요인은 소비다.

소비 회복 조짐은 연초부터 나타났다. 각종 심리지표가 연초 일제히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실제 소비는 의류나 화장품 등으로 범위가 제한됐다. 이는 지난해 연말 대기업의 상여금이 한꺼번에 시중에 풀리면서 의류 구매가 늘어난 데다, 지난해 윤달이 들어 미뤄졌던 결혼이 올 초 한꺼번에 몰리면서 혼수용품이 '반짝 경기'를 탄 때문이었다.

2분기 들면서 소비가 기대했던 것만큼 빠른 속도로 살아나지 않자 소비심리는 한풀 꺾이기도 했다. 잠시 주춤했던 소비의 흐름을 다시 회복세로 돌려놓은 것은 자동차와 PDP TV 신모델 경쟁이었다. 하반기 들어 자동차 회사들이 신모델을 10여개나 내놓았고 가전사는 TV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면서 얼어붙었던 내구재 소비가 확 살아났다. 장기간 침체에 빠졌던 서적.문구 시장도 하반기 이후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소득으로 보면 월 평균 3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이, 연령대로는 20~30대로 분석된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고 있는 소비자 기대지수 추이를 보면 고소득층과 20~30대의 소비심리가 가장 빠르게 회복됐다. 앞으로 6개월 후 소비를 늘릴 것이라는 사람이 줄이겠다는 사람보다 많은 계층도 월 평균 300만원 이상, 20~30대로 나타났다.

이는 음식료 등 서민경기를 반영하는 품목의 소비가 여전히 침체한 데서도 유추할 수 있다. 하반기 들어 다른 품목의 소비는 대부분 증가세로 반전했으나 음식료.담배는 아직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소비가 살아나고 있으나 양극화는 해소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내년에는 소비를 부추기는 요인과 위축시킬 요인이 팽팽하게 맞선다. 주가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고, 소비 회복에 힘입어 내수기업의 투자가 자극되고 있다는 게 긍정적 요인이다. 반면 올 연말 종합부동산세가 처음 부과되면 고소득층의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고유가와 건설경기 위축도 소비 제약 요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환율이 현 수준에서 안정되고 유가 역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계획 발표 후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 소비 회복세는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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