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점 3.61 토익 955 … 서류 문턱에서 21번 탈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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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이 취업을 못하면 대체 취업은 누가 하는 건가요?” 지방 국립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3년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유모(31)씨는 요즘 자주 이런 의문에 빠져든다. 주변에서 서울대생들도 취업이 힘들다는 얘기를 접하면서다. 유씨는 “그래도 서울대생인데 지방대생만큼 취업이 어렵겠느냐”고 반문했다.

 ‘취업 대란’을 넘어 ‘취업 재앙’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서울대 졸업생들은 취업 문을 뚫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본지는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졸업생 30명의 취업 준비 과정을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우수한 스펙을 갖춘 서울대생들도 서류 전형의 문턱조차 쉽게 넘지 못하고 취업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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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 대상자들의 평균 학점은 3.63(4.3 만점 기준)으로 서울대 우수졸업(쿰라우데) 학점 기준인 3.60을 넘어섰다. 토익 평균 점수는 940점에 달했다. 대다수는 대기업 인턴이나 어학연수, 교환학생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공모전 입상, 봉사활동, 제2외국어 자격증 취득 등 스펙 쌓기에 매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수졸업자라는 타이틀은 취업 전선에서 빛을 내지 못했다. 이들의 취업 도전기는 험난했다. 입사 서류 지원 횟수는 평균 20건에 달했지만 이 중 7건만 통과했다. 평균 서류 전형 통과율이 35%에 그쳤다. 세 번 중 두 번은 서류 통과 문턱도 넘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나마 서류 전형을 통과해도 이후 전형 과정이나 최종 면접에서 탈락해 ‘취업 재수생’이 된 졸업생도 12명에 달했다.

 지난해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이모(27)씨는 학점 3.61. 토익 955점에 DELF(프랑스어 인증시험) B2를 통과했다.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6개월간 다녀왔고 졸업한 해엔 취업스터디를 4개나 하며 취업 준비에 매진했다. 하지만 대기업 등 28곳에 입사지원서를 내 21곳에서 서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혹시나 했던 7곳도 최종 면접에서 모두 탈락했다. 이씨는 “친척이나 고교 동창생들은 ‘설마 서울대생이 취업을 못하겠느냐’고 위로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며 “수십 곳을 지원해도 날 받아주는 회사 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A씨(27·영어교육과 졸업)의 지난해 졸업 학점은 3.60. 미국에서 1년간 유학생활을 하며 원어민 수준의 영어능력을 갖췄다. 토익 점수는 만점에 가까운 980점이었다. 혹시나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여러 개 땄다. 하지만 대기업 등 30곳에 지원했음에도 8곳에서만 서류가 통과됐고 결국 취업 재수생이 됐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들도 “그 과정은 생각하기 싫을 만큼 처절했다”고 입을 모았다.

 2013년 12월 한 보험사에 입사한 B씨(25·중어중문학과 졸업)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갖추고 있다. 학점 3.91에 토익 만점, HSK(중국어 능력시험) 6급 등 어학 점수도 수준급이다. 중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외국기관에서 인턴도 했다. 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 시간만 100시간이 넘었다. 하지만 B씨는 지원서를 넣는 족족 탈락했다. 외국의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도 했지만 ‘도피성 유학’ 같아 다시 취업 준비로 방향을 틀었다. 졸업까지 연기하며 취업에 매달렸다. 그 결과 보험사에 취직했다. B씨는 “대학 간판을 떠나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웬만한 스펙으론 명함도 내밀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대학 생활을 낭만의 시기라고 하지만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분석 결과 미취업자(12명)의 토익 평균 점수는 950점으로 대기업 취업자(12명)의 토익 점수 932점보다 오히려 18점이 높았다. 미취업자와 금융권 취업자의 평균 학점은 3.5점으로 동일했다. 학점이나 토익 등 정형화된 스펙보다는 자기소개서 등에서 직무와 관련된 자신만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게 취업에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6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고고미술사학과의 경우 대학원에 진학한 2명을 제외한 4명의 졸업생이 모두 취업에 성공했다.

손국희·윤정민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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