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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안 짓고 가축도 없이 … ‘짝퉁 조합원’이 선거 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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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농사 안 짓는데 농협 조합원 채소재배농 자격으로 경남 N농협에 들어간 조합원의 농지는 덤불만 가득했다. 2~3년은 농사짓지 않은 땅이다. [송봉근 기자]

법 규정이 소용없었다. 농협·축협 조합원은 무자격자투성이였다. 현행법상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길러야 조합원이 될 수 있는데도 아예 농사를 짓지 않는 조합원이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합들 스스로 ‘짝퉁 조합원’이라 부르는 이들이다. 짝퉁 조합원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곳도 있었다.

 충남 S축협은 조합원 2263명 가운데 1238명(55%)이 무자격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말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다. 규정상 소는 2마리, 돼지는 10마리 이상 키워야 조합원이 될 수 있지만 이들 1238명은 한 마리도 키우지 않았다. 경기도 H농협은 1700명 조합원 중 1000여 명이 농업인임을 입증할 ‘농지원부’ 서류가 없었다. H농협은 이들 1000여 명에게 1차로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무자격 조합원은 오는 3월 11일 전국 조합장 동시 선거를 앞두고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지난해 실시한 전면 조사에서 쏟아져 나왔다. 전국에서 10만8600명의 짝퉁 조합원을 찾아내 탈퇴 처분했다. 과거에도 매년 각 조합이 자체 조사해 한 해 3만 명가량을 탈퇴시켰으나 이번에는 조사 강도를 높여 그 세 배 이상을 퇴출시켰다.

소도 없는데 축협 조합원 한우를 기른다며 충남 S축협에 가입한 조합원의 축사. 짚단이 들어 있는 흰 비닐만 있을 뿐 소는 한 마리도 없다. [신진호 기자]

 지난해 탈퇴 처분을 받은 10만8600명은 전체 농·축협 조합원 235만500명의 약 5%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전직 농협 조합장은 “11만 명 가까운 숫자가 빠져나갔다지만 이마저도 실제 짝퉁 조합원의 일부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역 농·축협은 지난해 강도 높게 조사를 해 짝퉁 조합원을 잔뜩 적발해 놓고도 일부만 탈퇴시켰다. 경기도 H농협은 찾아낸 1000여 명 중 25명만 탈퇴 대상으로 정했다. 나머지 980여 명이 농지원부 서류를 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어 일괄 사퇴시켰다가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1238명이 짝퉁 조합원이었던 충남 S축협은 5분의 1이 안 되는 203명만 탈퇴시키기로 했다. 나머지는 ‘1년 안에 다시 기르기 시작하겠다’는 계획서만 받고 자격을 유지시켰다. S축협 측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가축 사육을 중단할 수 있어 1년 안에 다시 시작하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S축협에는 이렇게 계획서만 내면 자격을 유지시켜주는 점을 이용하는 조합원도 있다. 몇 년간 계속 계획서만 내고 가축은 기르지 않는 식이다. 3년 전 한우 기르기를 중단하고 축사는 창고로 쓰는 이모(55)씨가 그런 경우다.

 조사가 자체가 부실해 적발조차 못하는 일 또한 적지 않다. 전남 S농협 조합원 이모(65)씨는 “물려받은 농지가 있어 20년 전 조합원이 됐지만 회사원이었던 나는 전혀 농사를 지은 적이 없다”며 “올해 실태조사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농협 임원은 “짝퉁 조합원은 대체로 선거에서 현직 조합장을 밀어준 이들”이라며 “그 때문에 조합장들이 무자격 조합원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탈퇴시키지 않고 사실상 방치한다”고 말했다.

 3월 11일의 조합장 동시 선거는 이처럼 무자격 조합원 의심자가 많은 가운데 치러지는 것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많다. 실제 “무자격 조합원 수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라면 선거는 무효”라는 법원 판례가 있다. 2013년 6월 대전지법이 내린 판결이다. 당시 대전원예농협 조합원 최모(53)씨가 조합을 상대로 선거무효 확인소송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무자격 조합원 가운데 374명이 투표했고, 이 숫자가 1위와 2위 간 표 차이인 298표보다 많았다. 결국 선거 무효가 돼 재선거를 치렀다. 재선거 역시 결과는 같았으나 최씨는 이 역시 문제가 있다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황의식 선임연구위원은 “짝퉁 조합원은 유리한 대출 조건처럼 자격을 누릴 때 돌아오는 혜택에만 관심이 있을 뿐 조합 경영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이런 조합원은 조합장 선거에 참여할 수 없도록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위성욱(팀장)·최경호·신진호·임명수·김윤호·김기환 기자
사진=송봉근·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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