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골프 레슨, 딸 뉴비틀 … 한전·한수원 ‘백화점식 수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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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만원짜리 카오디오, 360만원짜리 독일제 자전거, 자녀가 탈 외제차와 골프 레슨비….

 한국전력과 한전 자회사인 한전KDN 임직원 등이 납품 비리와 관련해 업체로부터 받은 뇌물 목록 중 일부다. 현금·법인카드는 기본이고 전자제품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 로비’를 받았던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특히 뇌물 제공 업체는 최근 6년간 3억5000만원가량의 로비자금을 쓰고 412억원 상당의 한전 발주 사업을 수주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부장 장영섭)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통신장비 납품업체 케이제이시스템즈 대표 김모(55)씨로부터 총 3억569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배임수재 등)로 한전·한전KDN·한국수력원자력의 전·현직 임직원 11명을 기소(7명 구속, 4명 불구속)했다고 1일 밝혔다. 검찰은 또 이들에게 뇌물을 건넨 대표 김씨 등 업체 관계자 3명과 이 과정에서 수사 청탁을 받은 경찰관 1명도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강모(55·구속기소) 전 한전 상임감사는 2010년부터 1년여간 한전과 한전KDN의 사업규모 타당성을 검토하는 일상감사를 총괄했다. 강씨는 이 과정에서 김씨로부터 납품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을 받고 차량 트렁크를 통해 현금 1500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퇴임 후에는 제네시스 렌터카를 제공받았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강씨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일했다. 한전 전력IT추진처장 출신 김모(60)씨는 2009년 현금 2000만원과 딸이 이용할 뉴비틀 승용차(시가 3250만원)를 김씨로부터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수력원자력 양수발전소장을 지낸 김모(59)씨는 발전소에서 발주하는 종합 상황판 교체 사업 관련 청탁을 들어주고 프로 골프선수 지망생인 아들의 레슨비, 해외 전지훈련비 등 2700만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한전과 한수원은 한전의 자회사인 한전KDN을 통해 정보기술(IT) 관련 사업을 발주한다. 한전KDN 국모(55) 정보통신사업처장은 김씨로부터 자금 세탁을 거친 수표 5000만원과 중고 모닝 자동차(시가 650만원)를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구속기소됐다. 이 회사 고모(54) 팀장은 현금과 360만원 상당의 독일제 자전거 1대를, 신모(46) 팀장은 차량에 최고급 카오디오를 교체해주는 비용(990만원)과 시가 100만원짜리 노트북 1대를 받았다고 검찰은 말했다.

 조사 결과 김씨는 경쟁업체를 배제시키기 위해 수사관에게도 로비를 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근무하던 강모(45·구속기소) 경정에게 경쟁 업체 A사에 관한 비위 첩보를 제공한 뒤 이를 상부에 보고토록 했다는 것이다. 실제 수사도 진행됐다고 한다. 그 대가로 강 경정의 부인을 회사에 위장 취업시켜 매달 월급조로 200만원가량씩 총 3800만원을 2010년 8월~2011년 12월 사이 지급했다고 한다. 강 경정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에 두 차례 파견근무한 경력이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전방위 로비 덕분에 케이제이시스템즈는 2006년 설립된 신생 회사인데도 2008년부터 최근까지 한전에서 총 63건, 412억원어치의 납품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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