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이기물라 카는데 … 지금 선거하문 박살 날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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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04면

“대통령이 국민을 이기물라 카는데 그기 되겠나.”

박 대통령 정치적 본향 TK 가보니

지난달 30일 오전 대구 서문시장. “요즘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 인기 어때요”라고 묻자 곽문섭(59)씨는 눈을 찌푸렸다. 시장에서 30년째 구둣방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기껏 대통령 뽑아줬더니 국민 위에 군림할라 칸다”고 했다.

“국민이 지금 이야기하는기 3인방이 정치를 농락했다 카자나요. 그기 아무리 틀리도 귀 딱 닫고 ‘나는 비서진을 믿는다’꼬, 그케뿌니까 검찰도 손 못 대고…. 지금 대구서 선거하문 박살 나지요.”

박 대통령 지지율 30% 선 붕괴의 주요인은 핵심 지지층의 지지 철회다. 특히 박 대통령의 정치적 본향인 대구·경북 지역의 지지율이 1년 전에 비해 20%포인트나 떨어졌다. 실제로 대구·경북의 바닥 민심도 그럴까. 중앙SUNDAY가 찾아가봤다.

지역경제 피폐가 민심 이반으로
먼저 간 곳은 서문시장. 부산의 국제시장처럼 대구 민심의 풍향소다.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을 기대했지만, 내부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했다. 신문을 읽고 있던 한 상인에게 다가가자 “대통령이 뭘 하든 관심 없다”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모른다” “물어보지 마라”는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2012년 대선 당시 “우리가 박근혜를 지켜야 한다”며 시장판을 뜨겁게 달구던 열기는 온데간데없었다.

20년째 노점상을 하고 있는 전세열(59)씨는 “2년간 달라진 게 없으니 그라제”라고 운을 뗐다. “경기가 완전 죽어뿌께네 대통령이 무능해서 저래 되나 싶고. 답답하다”고 했다. 옆에 있던 상인이 거들었다. “장사 안 되니까 저래 대통령 잘못이라 카는 기지. 내는 박근혜가 불쌍타.” 그러면서도 “손님 없긴 진짜 없어”라고 했다.

서문시장을 나와 택시를 탔다. 대통령 얘기를 꺼내자 택시기사 전태호(61)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내 대선 때 기표소 안에서 우리 박근혜 후보 대통령 되게 해달라꼬 기도한 사람이라요. 어디 내만 그랬습니까. 대구·경북 아니마 그분이 대통령 됐겠심니까. 택도 없지요. 근데 박 대통령이 대구를 위해서 한 가지라도 해논 기 뭐 있심니까. 실지로 대구 경제가 대통령 하기 전보다 더 모합니다.”

2013년 대구의 1인당 평균 지역내총생산(GRDP)은 1815만원으로 전국 광역단체 중 최하위였다. 15∼29세 청년실업률도 9.9%로 2012년에 비해 2%포인트 높아졌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송창수(61)씨는 “우리 식당만 해도 세월호 사건 전보다 매출이 40% 떨어졌다”며 “요즘은 약수터에 가도 ‘뽑아봤자 똑같다’는 소리만 들린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광고기획사를 다니는 한모(44)씨는 “담뱃값 올린 데다, 연말정산만 해도 서민한테만 증세하는 거 같아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내년 총선에서 대구가 확 디비질 수도 있다”고 했다.

대구를 벗어나 경북 김천으로 향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8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보수의 텃밭이다. 국정 운영에 점수를 매겨달라고 하자 김천 시내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민호(49)씨는 “지금 봐서는 지지율이랑 비슷하다. 한 30점 되는 거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은 열심히 할라카는데 옆에서 받쳐주지를 안 한다. 그래도 우리 대통령 아이가”라며 동질감을 표했다. 아포읍에 사는 이모(50·여)씨는 “잘하겠다 캐서 믿고 맡겼는데 먹고살기 더 힘들어졌다”면서도 “야당을 찍어줄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전폭적 지지에서 조건부 지지로 돌아선 분위기였다.

경제 살아나도 꼭 지지율 오르진 않아
지역으로는 대구·경북, 연령으로는 50대, 직업군으로는 자영업자인 핵심 지지층의 이탈은 박 대통령으로선 뼈아픈 현상이다. 1년 전에 비해 최대 35%포인트나 빠졌다. 과거 정권에서도 핵심 지지층의 반발은 아킬레스건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초 이라크 파병 수용으로 진보층의 반발을 사면서 임기 말까지 지지율 하락에 허덕였다.

대통령 지지율은 통상 ‘전고후저(前高後低)’로 움직이곤 한다. 집권 초엔 ‘제왕적 대통령’이다가도 임기 말엔 ‘레임덕 대통령’으로 물러서기도 한다. 하지만 집권 3년차 초반 20%대 지지율은 이례적이다. 한국갤럽 관계자는 “이 정도 지지율은 보통 4년차 하반기에 나온다. 1년 반 이상 앞당겨졌다”고 했다.

그럼 지지율 반등 카드는 무엇인가. 대표적인 게 남북관계 개선이다. 김대중 정부는 6·15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지지율을 단박에 16%포인트나 끌어올렸다. 또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노태우 구속으로 상징되는 역사 바로세우기로 집권 4년차임에도 지지율을 9%포인트 회복했다. 문제는 대형 호재의 지속성 여부다. 역사 바로세우기, 남북 정상회담 이후 두 지도자의 지지율은 다시 하락했다. 일회성 이벤트의 한계다.

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다만 경제회복이 곧바로 지지율 상승과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고민거리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며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하락세에 접어든 지지율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거시경제지표와 체감지수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도 녹록지 않다. 좋지 못한 경제상황이 지지율 하락기엔 결정타를 가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만으로 지지율 반등을 꾀하긴 힘들다는 분석이다.

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포용과 통합만이 해법”이라고 조언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 광우병 파동, 글로벌 금융위기,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으로 굴욕적인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집권 2년차 김대중 대통령 국장 수용과 동반성장을 앞세우며 반대층을 끌어안아 지지율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4대 개혁입법, 대연정 제안 등 집권 중반기 이후에도 대치 국면을 이어가면서 지지율 하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원택 교수는 “대립 요소가 큰 ‘분열’ 의제보다는 누구나 공감하는 ‘합의’ 이슈가 지지율 하락을 막는 버팀목”이라고 했다.

김형준 교수는 “박 대통령은 벌여 놓은 일이 많다. 지지율에 쫓겨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기보다 현재의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잘 마무리하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이동관 전 홍보수석은 “집권 3년차는 구호가 아닌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더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한편 앞으로 3년이 더 남았고, 개인 비리가 없으며, 대통령에 대한 온정 여론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현시점이 바닥을 다지는 과정일지 모른다는 시각도 있다. 임동욱 교수는 “모든 건 결국 대통령의 몫이다. 답도 알고 있을 것이다. 꽉 움켜쥐고 있는 걸 조금만 풀어도 지지율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대구·김천=천권필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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