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정책 약발 떨어졌나, 뛰는 재건축 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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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할 카드가 오죽 없었으면…. 하지만 그것으로 되겠습니까." 정부가 부실 안전진단으로 의심되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 단지에 대해 직권조사를 한다고 발표하자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않은 서울 잠실 주공 5단지 부근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12일 이같이 말했다. 이 아파트는 올 들어 30% 이상 올랐지만 그 이유가 안전진단 절차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아파트 34평형은 8억5000만원으로 정부 발표가 나온 뒤 호가에 변동이 없다. 그는 "시장이 놀랄 정도의 초강도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달아오른 시장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 대책에 시장은 시큰둥=건설교통부가 값이 이상 급등하는 서울 강남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대해 칼을 빼들었지만 시장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알맹이가 없다는 얘기다. 동원 가능한 정책이 동났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건교부 서종대 주택국장은 재건축 추진상황 점검반을 가동하면서 필요할 경우 안전진단 직권조사를 하고, 3종 주거지역에서는 35층 이상 재건축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전진단은 이미 강화된 매뉴얼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최근 값이 많이 오른 서초구 잠원동, 송파구 잠실동 재건축 단지는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한 곳이 많다"며 "정부가 나서 직권조사를 한다고 집값이 잡히겠느냐"고 말했다.

아파트 값이 오르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데 엉뚱한 대책만 내놓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2003년 7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 이후 안전진단을 통과한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연립주택 2~3곳에 불과하고 중층아파트(10~15층)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건교부가 재건축 아파트값 급등의 원인을 느슨한 안전진단으로 짚은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초고층 재건축 불허 조치도 이미 서울시에서 시행 중이다. 서울시는 2월 최고 60층의 강남구 압구정동 재건축 계획에 대해 '불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최고 35층의 잠원동 한신 5차에 대해선 건축심의를 통과시켰다. 건교부는 "초고층 재건축의 기준층수는 30층 ±5층으로 본다"고 밝혔으나 중개업계는 한신 5차처럼 35층 이하에 대해선 계속 재건축을 허용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재건축 아파트값이 오를 만한 호재가 없는데 이상 급등하고 있다며 거품일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 투기억제책 동났나=현재 정부가 시장에 내놓을 만한 마땅한 카드가 없다. 참여정부의 주택정책 일정표인 2003년 10.29 대책에 들어 있는 카드는 대부분 써버렸다. 올 1월부터 종합부동산세, 1가구 3주택 양도세 중과 조치가 시행 중이고 5월 19일부터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억눌렀던 개발이익환수제도 시행된다. 한 중개업자는 "최근 아파트값이 급상승한 것은 정부가 쓸 대책은 다 사용해 더 이상 악재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실탄이 없는 것은 아니다. 10.29 대책에서 언급한 카드 중 안 써먹은 것이 세 가지 있다. 주택거래허가제(투기지역에서 일정 면적 이상 아파트 거래 때 허가 필요), 양도세 탄력세율(2주택자가 투기지역 내 첫 주택을 팔 때 15%포인트 범위 내 중과세), 주택 담보 대출 총량제(주택담보 대출 증가를 가계대출 증가율 이내로 억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주택거래허가제는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대책인 데다 실제 시행하기 위한 행정력도 모자라 쉽게 도입하기 힘들다. 담보 대출 총량제는 주택 대출 외에 마땅히 돈을 빌려 줄 곳이 없는 은행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양도세 탄력세율 부과는 소득세법 시행령만 고치면 쓸 수 있지만 실수요 위주로 재편된 지금 시장에선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권 등의 '집값 안정' 요구가 거세지면 이런저런 개입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원은 "가격을 잡는 부동산 정책은 성공하기 어려운 데도 정부가 임기응변식으로 과거 정책을 재탕하고 있다"며 "강남권의 경우 수요가 많은 중대형 평형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귀식.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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