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자국으로 돌아가는 미·일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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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권선주
기업은행장

제조업은 한국 경제의 근간이다. 한국 경제가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중심에 제조업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다. 1960년 이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약 50배 증가했지만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630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4.4%에서 28.7%로 상승했다. 앞으로도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서비스업 등 다른 산업의 성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조업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왜 제조업이 중요할까. 제조업체를 유치할 경우 설비 투자가 증가하고 고용이 늘어난다. 제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간접적인 고용 유발 효과도 크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면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고 이는 다시 소비 증가로 연결된다.

특히 대기업을 유치할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중소 협력기업의 생산 증대와 고용 확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기업 공장의 해외 이전은 한 지역의 쇠락을 불러오고 이런 현상이 확대되면 한 국가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은 1980년대 이후 제조업체의 잇따른 해외 탈출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화됐다. 전기전자와 자동차, 정밀기기와 같은 주력 산업의 해외 이전이 이어졌고 대기업과 함께 중소기업들의 동반 진출도 확대됐다. 이로 인해 일본 내에 있는 산업단지들의 생산기반이 붕괴되고 종업원 수가 크게 감소했다. 제조업 공동화가 장기화하면서 무역수지 적자도 만성화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과거 일본의 모습이 우리의 현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국가 경제에서 제조업이 중요한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서비스 산업이 발전한 선진국도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의 유치와 해외 이전 방지, 경쟁력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내년 말까지 제조업에서 100만 명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은 바 있다. 이를 위해 제조업의 리쇼어링(reshoring·국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과 해외 기업의 미국 유치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세제 혜택과 기업의 환경 개선을 위한 인프라스트럭처 확충도 추진하고 있다. 마침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본국 회귀를 저울질하는 미국 기업들도 늘고 있다.

이런 정부의 노력과 시장 환경의 변화로 GE와 포드 등 여러 기업이 이미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했고 앞으로도 리쇼어링 기업이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적극적인 제조업 부흥 정책은 해외로 이전할 기업을 국내에 머물도록 하는 효과도 있다.

 일본도 공동화를 극복하기 위해 제조업의 부흥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인 법인세율을 단계적으로 내리고 규제도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엔저의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회귀 기업이 늘고 있다. 파나소닉과 혼다가 일부 생산공장을 일본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엔저의 심화로 실적이 좋아지면서 기업의 투자 여력은 확대됐다. 해외에서 생산해 일본으로 역수입하는 제품의 경우 수입 가격이 높아져 해외 생산의 이점이 줄었다.

 한국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회귀를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보다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대를 위해서는 국내 기업의 적극적인 글로벌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주력 산업과 연구개발(R&D) 같은 핵심 기능마저 속속 해외로 빠져나간다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성장동력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의 글로벌화만큼 국내 제조업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내 제조업 기반이 견실해야 고용과 성장을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력 확대와 국내 제조업 기반 강화를 위해 장기적이고 균형 잡힌 정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권선주 기업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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