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정년·급료 등서 크게 불리|「유엔여성협약」가입 앞둔 남녀차별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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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5월26일 한국은 유엔여성차별 철폐협약의 90번째 서명국이 되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한다는 조약. 그래서「여성의 인권선언」으로까지 불리는 이 협약에 정부가 가입의사를 정식으로 밝힌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염연히 남녀차별이 존재하고, 협약내용중 국내법에 저촉되는 부분도 있어 문제점으로 등장했다. 즈음하여 전문 직업여성 서울클럽(회장 김근화)은 지난 25일 하오2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가입과 우리의 과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가졌다.
김현자의원은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이 국내법에 저촉되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는 자녀의 국적이 아버지 또는 어머니 국적을 따를 수 있게 한 것 등이 부계 혈통주의에 입각한 현행 한국 국적법에 정면 상치된다는 점.
두번째로 민사문제에서 남녀 동등한 법적능력, 재정관리 및 사법절차상 남녀평등 규정은 민법상 친족범위(제7백77조)및 호주제도(제7백78∼7백79조)의 규정에 저촉된다.
세째 혼인 가족관계에서 남녀 차별철폐는 민법의 친권자규정(제9백9조)과 자의성과 본(제7백81조)에 저촉된다는 것 등이다. 따라서 국내법중 저촉되는 부분의 시정 노력이 필요한데, 현재 정부는 국적법에 관한 부분(협약9조)만을 유보하고 가입하는 방향으로 추진중에 있다고 김의원은 밝혔다.
뒤이어 한국의 남녀차별현황을 생생하게 고발한 여성차별 사례발표에서는 법과 제도, 근로조건, 관행과 의식, 결의기구에의 참여에서 나타난 구체적 내용들이 열거되었다.
박준서씨(56)의 경우는 억대의 상속녀지만 부친이 유언 없이 사망하자 재산권이 큰삼촌·작은 삼촌 순으로 넘어가 유산을 거의 받지 못한 경우. 50년대 당시 구민법하의 불리한 상속법과「출가외인」이라는 문중의 견해 때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재산포기 각서를 쓰고 작은 집 한채를 양도받았다고 한다. 법·가문·친정가족도 도와주지 않아 현재 정년퇴직한 남편·자녀들과 어렵게 살고 있다.
김영희씨(43)는 전화교환원이었는데 소속이 체신부로부터 새로 발족한 전기통신공사로 바뀌면서 달라긴 인사규정에 따라 직장을 물러나야 했던 케이스. 즉, 공무원법은 정년을 55세, 특히 최근에는 기능직을 58세로 늦췄는데도 공사 인사규정은 여성의 대표직종인 교환원·타이피스트·전산원의 정년을 만43세로 바꿨기 때문이다.
정년 무효확인 소송을 서울지법에 냈으나 6월21일 기각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차별정년은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지원돼야 한다는 것이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의 주장이다.
최순자씨(24)는 올봄 Y대를 졸업하고 공개채용으로 모그룹 조사부에 근무중.
그런데 똑같은 조건으로 채용되어 같은 직책에서 일하는 남자동료와의 봉급 차가 무려 9만원이라는 것. 그는 자기의 경우를 주최측에 알렸으나 회사의 보복이 두려워 현장에 나타나지 못했다.
한편 홀트양자회 상담부장 박영옥씨는 친딸을 양자회에 맡기고 남자아이를 입양하겠다는 어머니, 계속 딸을 남자호적에 올리지도 않은 어머니를 고발. 그러나 주원인은 남편과 시가가족의 뿌리깊은 남아선호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흥은행 노조 여성부장 이한순씨는 장관20명중 여성은 단1명(5%), 국회의원은 2백85명중 9명(3.3%), 공무원은 총8만2천7백47명중 5천8백11명(약7.5%)인데 그것도 하위직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 따라서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여성은 크게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토론에는 배경숙교수(인하대)·배수곤씨(KDI부원장)·손덕수씨(이대강사)·한용식씨(한국노동문제안구소장)가 참가했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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