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통상임금 사실상 승소 … 3조 추가 인건비 부담 덜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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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16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노조원 23명이 상여금 등 6개 항목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옛 현대자동차써비스 소속 두 명에 대해서만 일부승소 판결을 내려 사실상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이 끝난 뒤 이경훈 지부장(오른쪽)과 김진우 기획1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현대자동차 노조가 현대차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 측이 사실상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부장 마용주)는 16일 유모씨 등 현대차 노조 직급별 대표 23명이 상여금 등 6개 항목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근로자 두 명의 청구를 인용했을 뿐 21명의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옛 현대자동차써비스의 정비 부문 근로자인 유모·조모씨 등 두 명에게 지급된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며 “유씨에게 임금 미지급분 389만원, 조씨에게 22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했다. 이 같은 금액은 이들의 총 청구 금액(약 2770만원)의 15%가량이다. 이번 판결로 2010~2012년 3년치 3조2000억원대로 추산되던 현대차의 추가 임금 부담은 사실상 해소됐다.

 법원은 유씨와 조씨가 실제 근무일에 따라 일할(日割·하루 급여) 방식으로 산정한 상여금을 받았으므로 이는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옛 현대차 노조원 대표 근로자 13명과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노조원 대표 근로자 다섯 명 등의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조건 없이 고정적으로 지급돼야 한다는 통상임금의 ‘고정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서다. 일정한 근무일수나 실적, 인사고과 등 조건에 따라 지급하는 상여금은 ‘고정성’이 깨져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이다.

 이런 차이는 1999년 통합된 각 회사가 부문별로 어떻게 상여금을 지급해 왔느냐에서 생겼다. 현대차는 조직 통합 후 ‘상여금 지급 시행 세칙’을 적용해왔다. 세칙 중엔 ‘15일 미만 근무자에겐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 반면 옛 현대차써비스에는 이 규정이 없는 것으로 간주돼 왔다.

 재판부는 “옛 현대차써비스 근로자들은 다른 부문 근로자와 달리 소정의 근로만 제공하면 일한 날짜대로 상여금을 받아온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을 산정하는 근거 자료다. 일반적으로는 기본급을 통상임금으로 보고 이를 기준으로 각종 수당을 산정한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기본급+상여금’을 기준으로 수당을 계산하기 때문에 수당이 올라간다.

 현대차는 재판 과정에서 “노조의 요구대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소급분으로 3조원 이상을 지출해야 해 중대한 경영상의 위기를 맞게 된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현대차 전체 근로자 가운데 현대차써비스 노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8.7%로 사측이 지급해야 할 소급액을 단순 환산하면 2756억원 수준”이라며 “그러나 사측이 실제 지급해야 할 금액은 이보다 현저히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측은 “소급 적용 대상 인원은 2200여 명(현대차써비스 출신 5700명 중 99년까지 정비직 근무자)으로 현대차 노조원 5만1600명 중 4.3%”라며 “현재 지급 추산액은 많아야 100억원”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포함해 각 통상임금 소송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뒤 이를 기준으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법정수당을 다시 계산한다. 이후 그간 지급받았던 급여가 이보다 적은 경우 차액을 지급해달라는 형태로 이뤄진다. 현대차써비스 근로자로 함께 소송을 제기한 영업직 근로자 두 명과 임시직 근로자 한 명은 그 차액을 입증하지 못해 소급분을 받지 못했다.

  현대차 측을 대리한 김앤장의 배현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고정성 판단 기준대로 일정 근무일수 충족 등의 조건이 붙으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 “논쟁 조기 해결” 환영=현대차 측은 “이번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 논쟁을 조기에 해소할 수 있는 기준점이 마련됐다”고 반겼다. 이번 판결을 사실상 ‘승소’로 해석하고 통상임금뿐만 아니라 생산성 기반의 새로운 임금체계도 올 3월 말까지 결론짓기로 했다. 한 임원은 “향후 현대차는 임금 체계 개선위원회를 통해 노사 자율적인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전영선·박민제·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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