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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걸린 '인터넷은행' 논의 … 은행 판도 바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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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시장에 ‘가볍고 빠른 플레이어’가 진입해 금융 산업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겠다.”(지난 5일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인터넷전문은행처럼 ‘가볍고 빠른 플레이어’를 찾는 정부의 발걸음이 본격화했다. 금융위원회는 9일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첫 모임을 가졌다. 3월까지 연구와 검토를 해 상반기내 정부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국회에서 하반기에 법개정이 된다면 연내 인터넷전문은행 1호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게 금융위의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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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의 타킷이 된 은행시장은 전형적인 과점체제다. 국내 은행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과 통폐합, 신한·하나은행의 부상, 금융지주회사 체제 도입 등 한차례 격변을 겪었다. 하지만 이후 국민-신한-하나-우리 4대 은행들이 압도적 시장지배력을 갖는 과점체제가 굳어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반은행의 총 자산(1398조4783억원) 중 4대 은행(외환은행 포함) 비중이 78.5%에 달한다. 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두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연간 1~2조원의 순익을 거둘 수 있는 게 대형 은행”이라면서 “그러니 고비용 구조 개선이나, 해외 진출에 공들일 유인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TF에서 핵심적으로 논의할 문제는 이른바 ‘은산(銀産)분리’다. 이를 풀지, 푼다면 누구에게 얼마나 풀어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은행법상 국내에서 산업자본 등 비금융주력자는 시중은행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으면 10%까지 가질 순 있지만 4%를 넘는 지분에 대한 의결권은 행사할 수 없다. ‘핀테크’를 통해 새로운 금융의 주역으로 주목받는 정보기술(IT)기업의 은행권 진입이 원천적으로 어려운 구조다. 보험·증권·카드 등 제2금융권도 산업자본이 대주주인 곳들이 많아 은행 진출이 쉽지 않다. 이를 손대지 않으면 기존 은행들이 세운 자회사들이 인터넷전문은행 시장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선 은행법상의 소유제한에 예외를 두거나 별도로 ‘인터넷전문은행법’같은 특별법을 만드는 방안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제조업 대기업에의 진입을 허용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규제를 풀더라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같은 대기업에는 제한을 두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은행’, ‘카카오은행’은 가능하지만 ‘삼성은행’, ‘현대차은행’은 고려 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또 인터넷전문은행의 업무범위와 대출한도를 제한해 이른바 ‘사(私)금고화’논란을 피해가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제2금융권과 IT업체들도 당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증권사와 저축은행, 인터넷 업체 등에서 관심을 갖고 문의를 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큰 변수다. 정부는 앞서 2008년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허용 방안을 내놓았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우리은행 인수를 노렸던 교보생명에 금융당국이 거부감을 드러냈던 것도 결국 ‘개인 대주주가 지배하는 회사에 은행을 내줄 수 있느냐’는 여론 탓이었다.

 이런 난관을 뚫고 진입 규제가 풀려도 새로운 플레이어가 시장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국내 소매금융은 미국처럼 큰 시장도, 중국처럼 성장하는 시장도 아니다. 게다가 기존 업체들의 서비스 수준이 높고, 네트워크도 강력하다. 틈새시장이 좁다는 얘기다. 자칫 ‘메기’라고 풀어놓은 신규 진입자가 은행이 아닌 저축은행·대부업체와 소액대출 경쟁을 하는 ‘피라미’가 될 수 있다.

조민근·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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