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맨얼굴…반 테러 연대 한편에 반이슬람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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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에 맞서는 파리의 거대한 연대’

뉴욕타임스(NYT)의 12일자 1면 헤드라인이다.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총성이 울린 지 나흘 만인 11일 파리에선 수백만 명이 반테러 행진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다. 40여 개국 세계 정상이 서로 팔짱을 낀 채 선두에서 이들을 이끌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파리가 세계의 수도”라고 선언했다. 현장의 많은 이들이 “감동적”이라고 증언했다.

연대의 희열은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인 12일 유럽은 다시 엄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테러 위협도, 이민을 둘러싼 인종·종교 간 갈등도 여전했다. 최근 유럽의 경제난으로 오히려 더 깊어진 듯했다. 프랑스는 이날부터 1만 명의 군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장 이브 르 드리앙 국방장관은 “현존하는 (테러) 위협에 특히 취약한 지역을 지키기 위해”라며 “해외에서 작전 중인 병력에 버금가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평시에 프랑스 영토 내에서 이 같은 규모의 군대를 전개한 건 처음이라고 한다.

실제 파리 테러범들의 공범이 여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다. 프랑스 당국은 “이들이 속한 테러조직의 6명 정도가 거리를 활보 중”(AP통신)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여성 공범으로 지목된 하야트 부메디엔의 명의로 등록된 차량을 운전한 사람을 찾고 있다.

프랑스의 지도층은 “무슬림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들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반이슬람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프랑스무슬림평의회(CFCM)는 “테러 이후 프랑스에서 이슬람 시설 등을 겨냥한 공격이 50건 이상 발생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중 이슬람 시설에 총격이나 수류탄을 투척한 사건이 21건이다.

이번 테러로 네 명이 숨진 유대인들도 이주를 고려할 정도로 공포를 느끼고 있다. 유럽유대인회의(Europe Jewish Congress) 측은 “희생자들을 예루살렘에 묻는 건 프랑스에선 묘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며 “그간 크고 작은 테러를 견뎌온 유대인으로선 이번 테러가 티핑 포인트(프랑스를 떠난다는 의미)”(NYT)라고 토로했다.

나치 독일의 경험 탓에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공격이 금기시됐던 독일에서도 이 ‘터부’가 사실상 무너졌다. 매주 월요일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반이슬람 집회(PEGIDA·페기다) 때문이다. 10월 300명 수준이던 게 지난주 1만8000명으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독일 사회에선 반PEGIDA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파리 테러 직후인 10일엔 3만5000여 명이 참여하는 반이슬람 집회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세(勢) 과시로 미리 PEGIDA의 기를 꺾으려는 시도였다. 연일 PEGIDA를 멀리하라고 요구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슬람은 독일의 일부”란 발언까지 했다.

결과적으론 독일 사회의 노력은 통하지 않았다. 12일 드레스덴 집회엔 경찰추산 2만5000여 명, 주최 측 주장으론 4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 중 일부는 메르켈 총리가 히잡을 쓴 사진을 들고 나왔다. 독일 전역에서 찬반 PEGIDA 집회가 경쟁적으로 열렸다. 영국 BBC 방송은 “독일의 정치 리더십이 PEGIDA의 급증세를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일반 무슬림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 출신의 무슬림인 사지드 자비드 영국 문화장관은 “모든 공동체가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무슬림 공동체는 더 큰 짐을 지고 있다”며 “우리가 좋든 싫든 테러리스트들이 무슬림이라고 자칭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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