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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조 쓰는데 아기 울음소리 못 늘린 출산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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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직장맘 인지영(31·서울 관악구)씨는 아이(2)를 대전의 친정어머니에게 맡긴다. 매주 금요일 밤 대전에 갔다 일요일 상경하는 생활이 벌써 1년 반째다. 인씨는 “둘째를 갖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당분간 그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인씨는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번호가 100번이 넘는 상황인데 믿고 맡길 만한 데가 있으면 둘이 아니라 셋도 낳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출산적령기 여성의 출산 기피 현상이 지속되면서 출산율이 좀처럼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1일 통계청·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 잠정치가 1.19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2012년 출산율 1.3명을 기록한 이후 추락한 출산율은 2년 연속 1.19명을 기록한 것이다. 정부가 2013년 한 해 동안 13조5249억원을 쏟아부었는데도 1.2명이란 견고한 벽은 깨지지 않았다. 2006년 이후 동원된 출산장려정책 가짓수만 100여 개, 2012년 이후엔 매년 예산이 10조원을 넘었으나 출산율은 요지부동이다. 특히 2013년 출산장려예산의 70.8%(9조5861억원)가 보육에 집중적으로 투입됐다. 그런데도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았다. 정책의 늪에 빠진 게 아니냐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세계적 인구통계학자 마이클 타이털바움(71) 하버드대 로스쿨 선임연구원은 “이렇게 많은 정책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이승욱(전 인구학회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도 “다양하게 정책을 쓰긴 하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건이 종합적으로 여전히 미흡하다”고 말했다. ‘취업→결혼→첫 출산→둘째 출산’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끊어져 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대로 가면 2100년 인구가 절반으로, 2500년에는 33만 명으로 줄어 중남미의 소국 바하마(35만 명)보다 적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인구연구센터장은 “보육 지원 대상을 직장 여성에 집중해야 한다”며 “국가가 아이를 키워준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시간 근로, 불규칙한 근로 관행 때문에 출산을 선택하기 어렵다”며 “기업들의 근로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이에스더·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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