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자녀를 때리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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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40대인 그 여성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경험했다. 그녀가 자신의 폭력 경험을 묘사할 때 그 잔혹함이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퇴역 군인이었던 그 아버지는 어린 자녀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부하에게 하듯 폭력을 행사했다. 그녀뿐 아니라 성장기에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한 대를 맞았든 반복적으로 매를 맞았든 그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녀들은 어김없이 눈물을 보인다.

  남자들이 내면의 불편한 감정을 처리하는 보편적인 방식은 신체 활동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섹스 하는 일이다. 그런 대체 방식을 갖지 못한 이들이나, 그런 방식으로도 미처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은 대체로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 쏟아낸다. 술을 마시고 자녀들을 때리거나, 아내를 팬 후 섹스를 요구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자식들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때렸고, 부부싸움 후 화해의 섹스를 한 것이라고. 저 말을 하는 남자들이 진심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점은 기이하다.

  자녀에게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는 성장기에 똑같은 것을 경험한 사람이다. 성장기에 필요한 사랑이나 정서적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던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른의 외형을 갖춘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내면에서는 기본적으로 낮은 자존감, 불안과 박해감, 자기파괴 성향 등의 문제를 감추고 있다. 내면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해볼 용기도 없어 그것을 만만한 대상에게 투사할 뿐이다. 그런 부모로부터 폭력을 경험한 이들을 보는 일은 안타깝다. 그들 역시 마음 깊이 새겨져 있는 박해감, 자기 비하감을 떨쳐내기 어려워한다. 외부 세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처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갈 힘도 결핍되어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해 회초리를 든다고 말하는 이들이 그 폭력의 20년 후 결과를 예측한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폭력 피해 경험은 한 사람의 생 전체와 직결되며, 당사자의 자신감, 창의성, 삶의 성취도와 비례한다.

  미숙한 남자가 내면의 불편한 감정을 외부로 쏟아낼 때 아내와 자녀 중 어느 쪽을 향하는 게 나을까 생각해본 적 있다. 둘 다 최악이지만 그나마 차악을 꼽아보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실에 한숨 쉬었다. 더 나쁜 상황은 아내에게 공처가이면서 자녀들에게만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가 아닐까 싶다. 그보다 더 나쁜 경우는 아내에게 회초리를 쥐어주고 아내 등뒤에 숨어 자녀 폭력에 동조하는 남자일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