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악기 가야금 다루는 독일 「앙케·슈탈」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이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의 숫자는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들만의 작은 세계, 한국 속의 이방에 살뿐 한국인 속에 묻혀 함께 호흡하며 생활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고유의 문화와 풍습 또는 생활양식을 즐기며 사는 주한 외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그의 거실 창에서는 지금 한창 건설공사가 진행중인 한강 금호대교가 내려다보인다. 독일여성 「앙케· 슈탈」(27).
올해로 한국에 거주한지 4년째인데 한국 전통 국악기의 하나인 가야금 연주가 그의 특기다.
『80년 9월부터 1년 반 동안 한양대 국악과에서 정식으로 가야금을 배웠습니다. 학교에서 시험도 치렀고 학생 합주곡 연주회에도 출연했지만 너무 어려워요. 잘 연주하려면 20년쯤 해야해요.』
미스 「슈탈」이 한국에 오게 된 동기도 가야금 때문이었다. 독일 쾰른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한 그는 쾰른대와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한양대로부터 학생교환 스칼라십을 얻은 것이다.

<산조 곡들을 좋아해>
『가야금은 약하지만 맑고 투명한 소리를 냅니다. 가야금은 물론 해금 등 모든 현악기의 산조 곡을 좋아합니다. 흐느껴 우는 인간의 목소리, 탄식하는 나무들의 부딪침 같은 멜랑콜릭한 분위기가 좋아요.』
쾰른 대학 재학시절 그 곳에 유학 온 많은 한국인 친구들을 통해 한국 전통음악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보통 4분의3, 4분의4 등으로 단조로운 서양음악에 비해 길고 짧은 장단과 박자가 섞여 유연하고 리드미컬한 한국음악에 크게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국악을 공부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한문이 섞인 이론서를 읽는 것이었어요.
1페이지를 읽는데 3시간 여가 걸리더군요. 제가 공부한 가야금은 특히 손가락을 퉁겨가며 연주하는 농현이 무척 힘들어요.』
학생 합주곡연주회에 출연하느라 바닥에 앉아 2시간 여를 연습하고 나면 다리에 쥐가 나서 움직일 수가 없어 애를 먹은 적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현재 중앙대학 안성분교에서 독일어를, 중앙대 부속 유치원에서는 체육을 가르치고 있다. KBS 텔레비전의 독어강좌에도 출연 중으로 나날이 바쁜 일과표에 쫓기고 있다. 한국 어린이들에게 전공의 발레를 가르치고 싶지만 마땅한 스튜디오가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한다.
한국에 온 뒤 연세대 한국어 학당에서 1년여 한국말을 배운 그는 지금 일상생활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한국말을 구사한다. 틈이 나면 혼자 서민적인 체취가 물씬한 서울의 싸구려 골동상가인 황학동을 산책하는 것이 그에겐 커다란 즐거움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활과 북· 자명종 시계· 작은 백자 항아리들이 다 이 상가를 산책하다 사들인 것이다. 그밖에도 그는 동대문·남대문 등 시장에서의 쇼핑을 즐긴다. 그가 한국말로 값을 물으면 상인들은 놀라면서 더욱 친절하게 대해 준다는 것이다.

<귀국 전 북춤 배울 터>
『한국에 온 직후에는 국악에 관해 더욱 많이 배우자는 생각에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국립국악원 연주는 빼놓지 않고 다녔습니다. 사물놀이 연주· 판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친구도 많이 사귀었지요』
요즈음은 바쁜 일과에 쫓기다보니 가야금 연습은 뒷전에 밀어놓고 감상에 치중하고 있는데, 특히 황병익씨가 쓴 현대 가야금 곡에 마음이 끌린다고 한다.
함부르크 태생인 그는 2년 뒤 독일로 돌아가면 안무가와 체육교사로 일할 생각이라고. 『한국에서 배우고 익힌 국악에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귀국하기 전에 한국 무용, 특히 북춤을 배우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박금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