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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노화] 20. 끝 '한국 백세인'들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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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백세인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중앙일보 '스톱! 노화팀'이 지난 6개월 동안 세계의 장수촌과 노화연구소를 취재하고 내린 결론이다.

유엔통계에 따르면 1998년 1백세 이상노인 인구는 전 세계에 13만5천명. 이 수치는 10년마다 두배씩 늘어나 2030년 이전에 1백만명을 초과할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00년 말 인구 통계에 나타난 1백세 이상 노인은 2천2백21명. 95년 4백94명의 네배가 넘는다. 초고령 인구가 가파른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대 의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소장 박상철 교수)가 국내 처음 전국 장수촌을 돌며 조사한 '한국의 백세인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백세인의 특징과 장수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아본다.

◆당신도 백세인이 될 수 있다=올해로 1백세를 맞은 김휴갑 할아버지(강원도 인제군). 칠순의 며느리 표현대로라면 '웽웽거리는 벌'처럼 산다. 동네 대소사 참견은 물론 버스를 타고 장을 보러 가고, 자신의 땅을 자식들이 처분할까봐 매주 등기부를 확인한다.

우리나라 백세인의 건강은 조사자들도 놀랄 정도다. 질병이 있는 백세인은 14%에 불과해 1백세 미만 노인보다 훨씬 건강했고, 스스로도 65%가 '좋다', 15%는 '보통'이라고 응답했다.이는 '병상 백세'가 아닌 '활동 백세'를 보여주는 대목.

장수의 첫번째 비결은 철저한 자기 관리. 특별한 건강비법은 없지만 음주와 흡연율이 극히 낮고, 평균 9시간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 식사는 규칙적으로 하루 세끼 일정한 양을 먹고,90%가 편식을 하지 않는다.

평균 1천㎉를 섭취할 정도로 적게 먹지만 영양소의 질적 수준이 매우 높은 것도 특징이다.

둘째는 강한 활동의욕과 일에 대한 윤리다. 조사 대상자였던 제주도 한씨 할머니는 눈이 멀고 앉은뱅이가 된 지금도 날씨만 좋으면 뒷밭에 나가 김을 맨다.

백세인 남성은 75세, 여성은 72세에 본업을 접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이들은 지금도 거동할 수 있는 한 거의 본능적으로 일을 한다. 일은 곧 삶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직선적이면서 밝은 성격이다. "말을 속에 담아두지 않고, 큰소리로 야단도 치고 화도 내지만, 때론 아이들과 장난을 칠 정도로 즐겁게 산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말이다.

성격의 특성을 꼽으면 백세인은 자기 주장이 강하면서 인정 많고 낙천적이다. 이러한 품성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부양하는 자식이나 며느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토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장수를 돕는다.

외국과 다른 점은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자식과 배우자를 잃은 경우 장수에 대해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식을 죽여 오래 산다''밥만 축내고 짐이나 된다'는 등 장수를 죄악으로 생각하는 백세인이 많았다.

이는 장수를 복으로 알고 당당하게 사는 일본 오키나와 노인들과 커다란 의식차를 보여준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인류학과 전경수 교수는 "외국에선 오래 사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장수인들을 볼 수 없다"며 "조상과 후손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오키나와 노인들처럼 이들에게도 사회적 역할이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들 삶의 질도 중요하다=자식들은 부모의 장수를 마냥 기뻐하지 않는다. 노인을 수발하는 것이 경제적 부담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노부모를 장남에게 맡기는 전통문화 때문에 맏며느리의 어려움이 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며느리가 모시는 경우가 67.5%로 월등히 많았다.평균 수발기간은 42년. 50년 이상도 35%나 됐다. 이중에는 남편과 사별하고도 홀로 부모를 모시는 며느리도 많았다.

형제.자매들이 봉양을 분담하는 외국과는 사뭇 다르다. 문제는 며느리도 70대 이상의 노인이라는 사실이다.부양자가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성인병에 시달리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백세인뿐 아니라 가족의 삶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한경혜 교수는 "초고령 노인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만큼 이들을 부양하는 가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수문화를 가꾸자=강원도 양구군 고대리의 노인들은 '수출 역군'이다. 75~98세에 이르는 25명의 노인들이 지게 같은 농기구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국 토속품 가게에 납품하는가 하면 수출까지 한다. 그동안 모은 기금으로 매년 두차례씩 해외여행도 하고, 지역내 군부대 의무실과 자매결연을 해 건강도 체크한다.

박상철 교수는 "노인들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며, 의존적인 계층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면에서 제주도는 장수문화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독립적인 생활을 하며 생산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시골보다는 도심, 또 여성보다는 남성이 장수시대를 사는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오키나와 노인들은 모두 일터에 나가, 약속을 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을 정도"라며 "퇴직 후 30~40년으로 늘어난 여생을 보람있게 살기 위해선 남성들은 과거의 지위나 신분의 족쇄를 풀고, 당당하게 변화에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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