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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신] 역할 놀이하며 배우고, CEO 불러다 얘기도 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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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경제 과목을 선택한 학생 비율이다. 생활과 윤리(50.5%), 사회문화(47.7%), 한국지리(29.4%) 등 10개 사회탐구 과목 중 꼴찌를 차지했다. 학생들이 경제 과목을 얼마나 어렵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수치다. 하지만 우리 생활은 경제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일하고, 은행에 돈을 저금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등 모든 행위가 경제활동이기 때문이다. 마미경 창덕여고 경제 교사가 ‘내 곁에 있는 경제’를 모토로 ‘체험형’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다. 그는 게임을 통해 어려운 경제 개념을 쉽게 익히게 돕고, 금융업계 종사자나 판사, 최고경영자(CEO) 등을 초청해 특강을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경제 과목에 흥미를 갖고, 평생 활용할 수 있는 경제 지식을 익힌다.

“달러를 한화로 환전할 때 원-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더 올랐다면 이익일까, 손해일까.” 마 교사가 환율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마 교사가 반드시 게임을 통해 수업하는 게 환율 단원이다.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개념이고,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단원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스위스 여행 중 환율 때문에 손해를 볼 뻔 했던 경험도 그가 환율을 더욱 제대로 가르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그는 “경제교사가 아니었으면 1990년 당시 10만원 정도 손해볼 뻔 했다”고 말했다.

 환율 게임은 학생 5~6명이 한 모둠을 이룬 후, 각자 외화나 원화를 사거나 파는 상황을 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예컨대 A가 배우 김수현 소속사 사장이라고 정한 후,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 1억 위안을 한화로 환전하는 상황을 만드는 거다. 환율 시세가 1위안에 180원이라고 할 때 A가 받을 수 있는 돈은 180억원이지만, 환율이 50% 하락하면 그의 수익금은 90억원으로 줄어든다. 중국에서 똑같은 돈을 벌었어도 환율 변동 폭에 따라 수익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평소 환율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했던 아이들도 자신이 프랑스에서 가방을 직수입해 파는 도매상, 미국에 있는 자녀에게 등록금을 보내야 하는 학부모 입장에 놓이면 환율의 중요성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마 교사는 “교과서에 있는 환율 개념을 아무리 설명해도 시험 끝나면 다 잊어버리기 마련”이라며 “게임을 통해 자연스레 터득하면 기억에도 오래 남아 효과적이다”고 설명했다.

 수업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 가족이 경험한 환율’ ‘신문에 나온 환율’ ‘외환 딜러 인터뷰’ ‘빅맥지수 알아보기’ 등을 과제로 내주고, 조사한 내용을 다른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경제에 좀 더 관심 있는 학생들이 깊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김예림(2학년)양은 “선생님 수업을 들은 후엔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읽어도 훨씬 이해가 잘된다”며 “경제 관련으로 진로를 생각할 정도로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경제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생생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간도 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난 후 주로 이뤄진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 겸 재미있게 경제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지난해는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사무국장과 신용회복위원회 전문강사, 알바천국 CEO, 김현용 동부지법 부장판사를 초청해 특강을 진행했다.

 마 교사는 특강도 학생 눈높이에 맞춘다. 우선 강의 시작 2주 전에 모든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아 정리한 후 강사에게 보낸다. 강사들은 이를 통해 아이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강의 내용을 준비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궁금한 내용에 대한 답을 해당 전문가에게 직접 들을 수 있으니 수업에 대한 집중력이 올라간다. 말 그대로 일석이조다. 마 교사는 “강의를 할 때도 ‘이건 OOO양이 궁금해 해서 설명한다’는 식으로 최대한 많은 학생들의 이름이 불릴 수 있게 요청한다”며 “권위 있는 전문가에게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체험형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08년 부터다. 하지만 그전부터 그의 마음 속에는 늘 ‘살아있는 사회수업’ ‘내 곁에 있는 경제’에 대한 생각이 있었고 전문가에게 강의를 듣는 게 학창시절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교사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학생들에게 “어떤 수업이 이상적인 수업이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이 당시 성공한 기업가의 표본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 김우중 회장을 직접 만나서 경제 얘기를 듣고 싶다고 답했던 기억 때문이다. 그때부터 정주영 회장을 초청해 강의를 진행하려 노력했지만, 그 꿈을 결국 실현하지 못한 채 정 회장이 작고했다. 그때부터 마 교사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걸 절대 미루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매년 국회의원, CEO, 법조인 등을 초청해 특강을 여는 이유다.

 경제 관련 뉴스를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신문 활용 교육도 꼭 한다. 경제 관련 뉴스를 스크랩한 후 기사내용 요약, 소감문 작성, 모르는 낱말 뜻 정리를 같이 해보는 식이다. 마 교사는 “일간지 경제면을 읽고 요약해 보는 게 경제 실력 쌓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며 “기사를 요약하다 보면 논술대비까지 저절로 된다”고 설명했다.

 인성교육에도 힘쓴다. “사회에 대해 가르치는 만큼 인성교육에 신경쓸↗ ↘ 수밖에 없다”는 거다. 대표적인 게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칭찬앨범’이다. 2학년 9반 교실 뒤편에는 학생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A4용지 4분의 1크기의 앨범이 놓여 있는데,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글을 쓴 걸 모아놓은 거다. ‘얼굴도 예쁘고, 책임감도 강하고, 물건도 잘 빌려준다’는 식의 단순한 내용이지만 펜으로 색칠하고 귀여운 그림까지 그려 넣는 등 정성을 쏟은게 많다.

 이런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서로 좋은 점을 발견하려 애쓴다. 마 교사는 “2008년부터 매해 해오고 있는 일 중 하나”라며 “지금까지 가르쳤던 아이들 중에서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을 겪은 아이들이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칭찬하고 칭찬받는 사이 아이들 인성이 바르게 함양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서울대에 입학해도 바른 인성을 갖추지 않은 인재는 아무 소용이 없다”며 “아무리 대학입시가 중요해도 인성교육에 대한 끈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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