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수진의 한국인은 왜

내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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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10월 서울로 부임하며 공들여 바꾼 게 하나 있다. 머리 스타일이다. 42세인 그에게 붙는 수식어 중 하나인 ‘역대 최연소’가 적잖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부임 전부터 “너무 어려 보이지 않게 머리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던 그다. 나이가 어린 게 고민이라니 부럽기 짝이 없지만 그럴 만도 하다. 리퍼트 대사가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기자들이 주목한 건 그가 애써 몇 달간 기른 머리 스타일이 아니었다. 1973년생인 그에겐 “6·25전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예비역인 그에게.

 최근 리퍼트 대사의 사진을 보면 예전의 짧게 깎은 군인 스타일은 흔적도 없고 흰 머리도 여러 가닥 보인다. 설정 아닌가 하는 비뚤어진 생각을 해보지만 실제로 그렇다면 꽤나 한국을 잘 이해한 셈 아닐까 싶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건 노래 제목일 뿐 한국 사회에선 나이는 숫자 그 이상의 막강한 힘을 갖는다. 상대가 한 살이라도 어리면 반말로 자동 전환하고 더 ‘높은’ 사람으로 등극한다. 산술적 나이로 사회적 관계가 정의되는, 가히 ‘나이이즘’의 사회라 할 만하다. 나이 아닌 친분으로 ‘너(tous)’와 ‘당신(vous)’을 결정해 말을 놓거나(tutoyer) 높이는(vouvoyer) 프랑스나, 사회적 관계가 경어·겸양어를 결정하는 경향이 짙은 일본과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 목도한 지하철 노약자석 자리 싸움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이 등장했다. 문제는 두 분이 다 주민등록증을 꺼냈는데 질문한 분의 나이가 어렸다는 거다. 슬그머니 “나이 먹으려면 곱게 먹을 것이지”라고 말을 돌린 그분의 목소리 데시벨이 갑자기 낮아진 건 기자만의 느낌은 아닐 터다.

신문 지면에도 인물 인터뷰엔 나이가 필수다. 북미·유럽 쪽 취재원에게 나이를 물으면 “나이가 인터뷰 내용이랑 무슨 상관이냐”는 이들이 적잖다. “먹을 만큼 먹었다 ”고 익살을 부리며 끝까지 알려주지 않은 미국인 학자는 아직도 조금 얄밉다.

 그나저나 이젠 “어려서 뭘 알겠어”가 아니라 “알 만한 나이도 됐잖아”가 어울리는 나이인데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는 일투성이다. 어떻게 나잇값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이, 해결책 대신 21세기 명곡으로 길이 남을 이 노래가 떠오른다. 가수 오승근씨의 트로트 ‘내 나이가 어때서’. 2015년 새해 첫 글은 그 후렴구로 마무리하련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