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그 1위 LIG 부용찬 "플레이오프 포기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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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의 꽃은 강력한 스파이크다. 힘차게 뛰어올라 시원하게 날리는 공격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창' 못지 않게 화려한 '방패'도 있다. 몸을 날려 강한 공격을 받아내는 리베로다.

LIG손해보험 리베로 부용찬(26)은 멋진 디그(스파이크를 받는 수비)와 몸을 날리는 수비로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여오현(37·현대캐피탈·세트당 평균 2.829개)을 제치고 디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부용찬(2.851개)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실패의 아픔을 딛고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수원 LIG인재니움에서 부용찬을 만났다.

-최근 인터뷰에서 데스티니(IBK기업은행)에게 남자선수를 꼽아달라고 하자 국내 선수 중에서는 부용찬을 지목했다.
"데스티니 키가 어떻게 되나? (1m95㎝라고 하자) 나는 1m75㎝라 반만할텐데(웃음). 우리 아내도 1m68㎝이라 하이힐 신으면 나보다 커서 나랑 있으면 안 신는다."

-지난 8월에 결혼했는데 집에 몇 번이나 갔나.
"네 번 갔다. 대표팀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즌이 시작되서 신혼여행도 아직 못 갔다. 솔직히 아직 결혼했다는 느낌이 잘 안 든다. 그래도 잘 이해해주니까 고맙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쳤다.
"진짜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일본과의 준결승(2-3 패)이 끝나고 이렇게 안 될 수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끝나고나서 선수들끼리 후회하지말자는 얘기를 했다. 그 전부터 금메달을 못 따더라도 후회없는 경기를 하자고 했었다."

-그래도 아쉬웠을텐데.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배운 것도 많았고, 느낀 것도 많았다. 이런 경험을 아무나 할 수 없으니까 감사한다. 솔직히 배구를 하면서 이번만큼 다 쏟아부었던 때는 없는 것 같다. 지금도 설렌다고 해야하나 묘한 느낌이 있다. 금메달이라는 목표 하나를 향해 모두 열심히 했다.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팀 선배 김요한은 시즌 초반 부용찬이 무척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김요한은 "올해 대표팀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정말 쉴 틈이 없었다. 용찬이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올시즌 초 부진했다. 대표팀 후유증이라고 봐도 될까.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시즌 초에 집중이 잘 안 되고 붕 뜨기도 했다. 대한항공전 때 몸 풀기 전에 승석이 형이랑 그런 얘기를 했다. 끝나고 나서 허무했고, 훈련도 잘 안 됐다. 리베로로서 욕심은 났지만 대표팀에서 디그만 했다. 리시브도 하고 싶었는데 금메달을 따려면 내 역할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그랬는데 마음이 잘 못 따라갔다. 무릎도 안 좋았다. 지난해 오른 무릎을 다쳤는데 힘을 반대쪽으로 주다보니 이젠 왼쪽이 더 나쁘다. 제대로 딛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그렇다고 팀 동료들 앞에서 내색할 수 없었다. 내가 없는 동안 다들 열심히 했으니까. 진통제 주사를 맞고, 약도 먹고, 참으면서 버텼다."

-대표팀을 맡았던 박기원 감독은 정민수(우리카드)가 주로 서브 리시브를 하고, 부용찬은 디그를 맡는 시스템을 구사했다. 그래서일까. 올해 디그는 좋은데, 리시브(60.6%)는 다소 불안하다.
"지난 시즌 리시브에 자신이 생겼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걸 느꼈고, 나 스스로도 많이 발전했고 조금만 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때 다쳤다. 선수들끼리 '몸 좋을 때 조심해야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정말 다쳤다. 주사를 맞으면서 버텼다. 리시브할 때 오른쪽 발이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그 자세를 하면서 다쳐서 서브를 받을 때마다 아팠다. 그렇다고 그 자세를 안 하면 리시브가 흔들렸다. 올해부터 자세를 바꾸면서 조금씩 느낌이 오는데 아직 불안감이 있다. 사실 다치고 나서 무릎에 대한 트라우마도 생겼다. 프로에 오면서 머리가 깨져도 받는다는 생각으로 담장도 넘어가면서 공을 받았는데 한 번 다치니까 그게 잘 안 되더라."

-특급 외국인 선수들이 많다. 리베로가 참 힘든 직종이라는 얘기도 있다.
"스트레스가 많다. 리시브하는 사람들은 아마 스트레스가 제일 많을 것이다. 요즘 외국인선수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다 서브가 좋다. 개인적으로는 시몬이 제일 어렵다. 각도나 힘이 지금까지의 외국인 선수들과 다르다. 레오도 말할 것 없이 힘들다. (손)현종이랑 (김)진만이 형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서브는 레프트들이 더 많이 받으니까. 내가 중심을 잡고 조율을 해줘야 하는데 내가 힘들어서 내것만 하다보니 미안했다.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현재 6위(7승12패)다. 올해 목표가 있다면.
"현실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쉽지 않지만 연승 한 번만 하면 된다. 대한항공이나 한국전력같은 팀들을 꼭 잡고, 삼성화재나 현대캐피탈도 한두번 씩은 이겨야 한다. OK저축은행전에서 한 세트도 못 땄는데 나머지 3번 중에 2번은 이기고 싶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팀이 기복이 있지만 리시브라인만 살아나면 어느 팀과도 해볼 수 있다."

수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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