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로 숨지는 아이 다시는 없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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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울산지검 김형준 부장검사, 김민정 검사, 박양호 검사(왼쪽부터)가 울산계모사건 자료집 발간에 얽힌 뒷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자료집을 전국 아동보호기관에 배포할 예정이다. [송봉근 기자]

“어른들에 대한 원망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지난해 10월 24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울산하늘공원의 한 납골함 앞에 국화꽃을 헌화한 두 남성은 이 같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는 두 달 후 아이를 위해 한 권의 책을 펴낸다. 납골함에 봉안된 이는 지난 2013년 10월 울산에서 계모의 폭행으로 숨진 A(당시 8세)양. 이날은 A양이 숨진 지 꼭 1년 되는 날이었다. 두 남성은 당시 사건을 맡았던 김형준(45) 울산지검 형사2부장 검사와 박양호(40) 검사. 이들은 “사건을 맡은 검사로서 재판 결과를 아이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울산 계모사건은 지난해 10월 항소심 재판부(부산고법)가 계모 박모(41)씨에게 살인죄를 적용, 징역 18년을 선고하면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수사와 재판 기록을 자료집으로 발간해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도서관에 무료로 배포하기로 했다. 김 부장검사는 “아이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자료집에 담았다”고 말했다.

 검사들은 수사기관이면서도 부모의 입장에서 재판을 준비했다. 6살 딸을 둔 박 검사는 태연하게 조사받는 계모의 모습에 분노했고, 공판을 준비한 김민정(38·여) 검사는 두 살배기 딸의 모습이 아른거려 사무실에서 눈물을 쏟았다. 구민기(34·여), 조아라(31·여) 검사는 숨진 A양 몸의 멍자국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부장검사는 방청석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초등학생 아들을 보며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고 했다.

 재판은 쉽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해외사례까지 준비한 검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검사들은 항소장을 제출하고 곧바로 증거부터 다시 챙겼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의 한(恨)을 조금이나마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빠뜨리거나 준비가 부족한 증거가 없는지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계모의 휴대전화에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 계모 박씨가 A양을 구타하는 소리가 복원된 것. 1심 재판을 준비할 때는 복원되지 않았던 파일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항소심 공판에서 이 소리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스피커로 음성파일을 재생했다. 법정은 아이의 울음소리와 구타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계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아동학대에 따른 사망에 대해 처음으로 살인죄를 인정한 것이다.

 울산지검은 이 같은 기록을 이번에 발간할 자료집에 담았다. 해외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와 처벌, 그리고 철저한 수사를 당부하며 시민들이 보내온 편지도 함께 실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자료집 발간에 사비를 보탰다. 울산지검은 우선 400부를 인쇄하기로 했다. 분량은 470페이지다.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도서관에서 볼 수 있다.

울산=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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