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청구된 세금 무료로 해결해드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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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형편이 어려운 시민의 부당한 조세를 세무사가 무료로 돕는다. 이런 취지로 올 3월 만들어진 ‘국선 세무사’ 제도가 대구·경북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직업이 없는 A(87·대구시 동구)씨는 지난달 ‘600만원의 불성실 가산세를 납부하라’고 쓰인 국세청 고지서를 받았다. 4년 전 판 농지(331㎡)에 부과된 벌금 성격의 세금이었다. 양도세를 덜 내고 땅을 팔았다는 것이다.

 왜 갑자기 세금이 나온 것인지, 부과된 가산세가 적법한지 따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세무사 등 조세 전문가를 선임할 형편이 못됐다.

 그는 국선 세무사 제도를 이용했다. 세무사의 도움을 받아 당시 양도세를 적게 낸 이유를 서류로 만들어 제출했고 결국 600만원의 불성실 가산세를 전액 감면받았다. A씨는 “돈벌이가 되는 재산 성격의 땅이 아니라 농사를 직접 지은 땅이어서 양도세를 적게 낸 것이고, 구청 공무원의 서류상 실수도 있었다”며 “이런 상황을 국선 세무사의 도움으로 모두 증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A씨처럼 매달 3명꼴로 이달까지 대구·경북 지역에서 26명의 시민이 낼 필요가 없는 세금을 찾아 해결했다.

 무료 조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선 세무사는 지역에 15명이 활동 중이다. 대구지방국세청에 2명, 동대구·남대구·경산·구미세무서 등 지역 13개 세무서에 1명씩 배정돼 있다.

 그렇다고 이 제도를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00만원 미만의 세금 문제여야 하고, 부동산 등 재산이 5억원 이하인 개인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와 상속세·증여세는 국선 세무사의 공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영철(50) 대구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은 “법인사업자 등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세무사를 요청할 수 없다”며 “제도가 만들어진 배경 자체가 영세 납세자, 즉 서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선 세무사는 모두 현직(1명은 변호사 자격 소지)에서 근무 중이다. 국가에서 일정 금액을 받는 국선 변호사와 달리 재능기부 형태로 스스로 자원해 무료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분자(48·여) 세무사는 “소액인 경우 세무사들이 수임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 수임료가 적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영세 납세자 대부분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요구하는 세금을 다 내고 있고, 이게 세무사들이 국선 활동에 나서게 된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국선 세무사 제도를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각 지역 세무서의 납세자보호담당관실을 찾아가 신청서만 쓰면 된다. 보통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2일 이내에 국선 세무사가 배정된다. 이후 납세자는 세무사 수임료를 낸 일반 납세자와 똑같이 세무사와 1대 1로 만나 무료로 조세 불복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남동국(57) 대구지방국세청장은 “국세청 차원에서도 국선 세무사가 지역에 활동하고 있다는 걸 시민들에게 적극 알리고 있다”며 “제도 정착을 위해 최근엔 과세 관련 고지서가 나갈 때 별도로 안내서까지 첨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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